2년 뒤 다섯번째 방한 ‘다문화’ 교황… “韓 공동체에 많은 관심” [새 교황 레오 14세 선출]

세계일보

레오 14세 한국과 인연 눈길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원 총장 시절
한국 4번 찾아… “소박한 성품” 정평
2027년 세계청년대회 서울서 개최
교황으론 4번째 한국 방문에 기대감

美 출신이지만 페루서 20년 선교활동
佛·伊 등 혈통… 선출 당일 영어 안 써
첫 부활 삼종기도 “전쟁 안돼”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가톨릭교회의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전임 교황 무덤 참배, 추기경들과 만남 등을 통해 업무를 본격화했다. 교황으로서 첫 행보에 그가 가진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 성향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 향후 행보를 주목하게 했다.

◆“프란치스코 유산 계승 여정”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바티칸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과 만나 “여러분은 제 능력을 넘어서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저를 도와주고 있다”며 “저는 단지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 밝혔다. 레오 14세 교황이 모든 추기경을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지난 8일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이후 처음이다. 그는 이어 “이러한 자세는 많은 전임자가 보여주셨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봉사에 완전히 헌신하고, 절제하고 본질만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잘 드러내 주셨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아 여정을 계속하자”고 밝혔다.

레오 14세 교황이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자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을 찾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로마=EPA연합뉴스

전임 교황이 이어온 개혁적 행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의 사회 개혁에 대한 의지는 1891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사회문제만을 다룬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하는 등 사회 개혁에 깊이 헌신한 레오 13세를 계승한 교황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레오 14세는 이날 이탈리아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 안장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을 참배하기도 했다. 교황청은 레오 14세가 대리석 무덤 위에 흰 꽃 한송이를 놓고 잠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레오 14세는 11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서 가진 첫 부활 삼종기도에서 “오늘날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이 조각조각 벌어지는 극적인 시나리오를 겪고 있다”면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일컬어 자주 사용한 ‘조각난 제3차 세계대전’이란 표현을 재상기시켜며 국제 관계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전임 교황의 행보를 따라간 것이다.

레오 14세가 가진 ‘다문화’적 면모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시카고 태생으로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은 레오 14세는 이후 20년간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2015년 페루 시민권도 취득하고 같은 해 페루 대주교로 임명되는 등 이채로운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여기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혈통과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과 아프리카계의 혼혈을 지칭하는 크레올의 혈통까지 다양한 배경을 지녔다.

선출 직후만 해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출신이라는 부분이 부각돼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현재는 가톨릭이 세계화되는 시대에 다양한 문화의 신자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NYT는 “레오 14세는 선출일 대중 앞에 서는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자신이 전형적인 미국인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신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신호로 보였다”고 보도했다.

◆4차례 방한… 한국과 긴밀한 인연

레오 14세는 한국과도 역대 어느 교황보다 긴밀한 인연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네 차례나 한국을 찾은 적이 있고, 2년 후엔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예정이다. 9일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한국지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수도회)’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이 수도회 총장 시절인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네 차례 방한해 한국지부 수도자와 만나거나 지부 총회에 참석했다.

레오 14세(가운데)가 2002년 한국을 방문해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한국지부의 수도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한국지부 제공

현재 한국지부장인 조우형 신부는 레오 14세의 네 차례 방한 중 두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조 신부는 언론과 통화에서 “수도회 총장이어서 높은 분이긴 했지만, 말씀이나 표현에서는 삼촌 같았다”고 당시 느낀 친근함을 회고했다.

2027년 다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8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WYD)에서 차기 2027년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인 세계청년대회는 교황과 청년들이 만나는 행사로 유명하다. 레오 14세가 세계청년대회를 위해 한국에 오면 교황의 역대 네 번째 방한으로 기록된다.

서필웅 기자, 박성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