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9일 “멀쩡히 잘 나가던 브라질이 퇴락한 것을 보라”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 2022년 대선부터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자신의 사법리스크가 부각될 때 특히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을 언급한 바 있다. 그동안 이 후보는 자신의 재판과 관련한 당의 일체 대응과 관련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날 발언을 이후로 당의 대응 수위가 바뀔지 관심이 쏠린다.
이 후보는 이날 경북 김천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선거법 재판 파기환송과 관련, 전국법관대표회의가 26일 소집된 것을 두고 “금방 열릴 줄 알았는데 상당히 뒤로 미뤄졌다.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 중 일부”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오는 것에는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이며 이 보루를 지키는 것이 어떤 길인지는 우리 국민께서, 그리고 사법부 구성원들이 다 알고 있다. 저는 대부분의 사법부 구성원을 믿고, 우리 사법 체계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최후의 보루가 오염되면 뭘 믿고 살겠나. 멀쩡히 잘 나가던 브라질이 퇴락한 것을 보라”라며 “최후의 보루의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거나 자폭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고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브라질, 그것도 룰라 대통령 발언을 꺼낸 국면은 대부분 본인의 ‘사법리스크’가 가장 부각될 때였다. 지난 대선에서는 상대 후보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의 위기를 불러옵니다. 그게 브라질이 대표적인 케이스죠. 혹시 위기의 민주주의라는 영화 보셨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현장 유세에서도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을 세계 8대 경제 강국으로 브라질을 만들었는데 검찰과 판사들이 편을 짜서 멀쩡한 사람 억울하게 죄 만들고 끌어내린 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라며 “지금 브라질 국민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쓰레기차에서 음식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0일 경기지사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기소되자 다시 룰라 대통령을 꺼냈다.
룰라 대통령은 2016년 재임 시절 부패 의혹으로 구속됐고 이듬해 1심에서 9년 6개월, 2018년 2심에서 12년 1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옥살이를 한 바 있다. 국영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 고위직 인사 개입과 뇌물 사건 등 부패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2021년 실형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룰라 대통령은 재기에 성공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수사와 판결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룰라에 유죄를 선고한 판사가 연방검사들에게 판결과 수감을 끌어낼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동안 이 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말조심’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초 민심 ‘경청’ 투어 지역이었던 접경지역에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경제 관련 발언을 주로 해왔다. 당 안팎에서도 이 후보를 두고 “실용적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외연확장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또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과 당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발언에도 “당이 알아서 할 것”이란 취지로 당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이 날 룰라 대통령 발언이 나오면서 이 후보와 민주당의 대법원 대응 방향이 바뀔지 주목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상고심 파기환송 직후부터 대법원 ‘개혁’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14일 이 후보 상고심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한 대법관을 모두 출석시킨 청문회가 예고돼 있고, 조 대법원장 탄핵안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입법부가 법을 만들면, 행정부가 법을 집행하고, 법원이 그 과정에서 위헌·위법 여부를 따져보되 집행은 할 수 없는 ‘삼권분립’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함께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진욱 의원과 윤준병 의원, 민형배 의원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포함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재판 과정에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된 경우’ 헌재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현재 대법원과 동등한 관계인 헌법재판소를 ‘4심 법원화’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대법원의 힘을 빼는 작업의 일환이다. 또 민 의원은 ‘법 왜곡죄’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법규의 자의적 적용을 막겠단 취지다. 다만 민 의원 법안의 경우 독일과 우리나라는 재판관 선출 방식이 달라 당장 적용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연방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데, 3분의 2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여야 합의가 없다면 재판관 선출이 불가능하다. 지역구 의석이 대부분인 의석 배분 구조도 독일과 다르다. 법 왜곡죄 도입을 두고서도 ‘왜곡의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지를 두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민 의원은 이외에 대법관의 3분의 1 이상을 판검사 외에 변호사, 법학교수도 지원이 가능하게 하고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에도 비법조인을 절반 이상 포함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장경태 의원은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다만 이러한 대법원 ‘개혁’ 법안이 대통령 불소추 특권 관련 법안과 ‘면소’를 노린 공직선거법 개정과 함께 추진되면서 사실상 ‘이 후보 맞춤형 법안’이라는 지적도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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