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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史 바꿔온… 유령 같은 이들의 궤적

입력 : 2025-05-10 06:00:00 수정 : 2025-05-08 19: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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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유령들/ 오창섭/ 안그라픽스/ 2만5000원

 

2003년 9월 당시 건설교통부는 느닷없이 새 자동차 번호판 ‘양식’을 발표한다. ‘서울00 가0000’식이던 번호판을 현행 ‘00 가0000’으로 바꾸겠다고. 두 글자를 빼는 대신 글자 크기를 키워 시인성과 가시성을 향상하겠다는 이유를 댔다. 이미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차 번호판의 지역표시를 삭제하자던 논의가 있던 터였다. 첫 반응은 긍정적이었으나 막상 새 번호판이 등장하자 여론이 차갑게 식었다. 너무 촌스럽다는 비판이 거셌다.

훗날 관련 토론회에서 그리된 배경이 드러났다. 주무부서인 자동차 관리과가 ‘그림 좀 그린다’는 한 직원에게 ‘알아보기 쉽게 최대한 글씨를 키우라’고 주문했고, 그가 만든 작품이 전국에서 발급된 것이다. 동네 분식집조차 간판에서부터 식기류까지 디자인을 고민하는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연이어 벌어진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 졸속 디자인 논란과 맞물리며 지금의 ‘공공 디자인’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오창섭/ 안그라픽스/ 2만5000원

디자인역사문화 연구자 오창섭은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문화의 담론이 시작된 2000년대를 ‘유령의 시대’로 바라본다. “유령은 죽은 산 자다. 저 세계에 있으면서 이 세계에 있는 무엇이다. 부족하면서도 넘치고, 넘치지만 부족한 양가성을 지닌 존재다…. 한국 디자인사의 맥락에서 2000년대는 유령들의 시대였다. 디자인 문화, 공공 디자인, 작가주의 디자인은 유령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 시대 고유의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1부 ‘디자인 문화의 유령’은 디자인이 제도화된 ‘문화’라는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보여준다. 2부 ‘공공 디자인의 유령’은 디자인이 공적 영역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생명 연장을 꿈꾸게 된 과정이 소개된다. 3부 ‘작가주의 디자인의 유령’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 얽힌 신화를 해체하며 특정 세대의 산물이나 영웅 서사로 고정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한다. 실명이 등장하는 생생한 기록이 주는 현장감이 서늘하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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