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비전 빠진 권력 싸움 그치면
누가 후보 돼도 국민 마음 못 얻어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가 어제 80분간 단일화 회동을 가졌지만, 합의 없이 결렬됐다. 보수 진영 ‘빅텐트’ 논의가 첫걸음부터 난기류에 휩싸인 셈이다. 한 후보는 회동 직전 입장 발표를 통해 “(11일까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김 후보는 한 후보의 통첩을 사실상 무시했다. 김 후보의 김재원 비서실장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황우여 전 대선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을 만나 회동 결렬을 전제로 ‘여론조사 단일화’ 절차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김·한 후보는 오늘 다시 추가회동을 갖기로 했지만, 타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김 후보는 대선 후보 등록일(10∼11일) 이전에 단일화를 이루려는 당 지도부 압박에 반발하고 있다. 당 지도부 주도의 조기 단일화 대신 자신 주도의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어제 회동 결렬 직후 권성동 원내대표는 “김후보가 결단해 달라”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한 후보도 단일화 회동 직전 일방적으로 단일화 시한을 던지고 회동 내내 ‘11일 전 단일화’ 입장만 반복했다. 대선을 20여일 앞둔 정당의 모습이라면 누가 믿겠나.
공당의 경선 절차를 거쳐 선출된 후보가 당 밖의 주자와 단일화를 하는 것은 선진 민주국가에선 보기 힘든 한국적 관행이다. 제대로 된 정당 민주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가치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한 단일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단일화 효과가 있으려면 그 과정에서 감동을 주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보여야 한다. 지금 보수의 후보 단일화 과정은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최근 공개된 단일화 적합도 조사(리서치앤리서치)에서 국민의힘 지지층과 중도층은 한 후보(46%)를 김 후보(25.8%)보다 더 선호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 지도부는 당원 설문 결과를 단일화 불쏘시개로 활용하려 한다. 후보 교체론도 나온다. 김 후보로선 불만이겠지만 당의 압박은 경선 기간 ‘김덕수(김문수+한덕수)’를 외쳤던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이 와중에 경선에서 탈락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용산과 당 지도부가 합작해 느닷없이 한덕수를 띄우며 탄핵 대선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로 몰고 가려고 했다”며 ‘윤석열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점입가경이다. 이런 식으로는 누가 국민의힘 후보가 돼도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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