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기재1차관 ‘대행 체제’
부처 간 조율기능 약화 불가피
한미 ‘2+2통상협의’ 진행 불투명
美 베선트 재무 협상상대 실종
‘7월 패키지’ 도출도 어려울 듯
일각 “美서 협상 재촉 힘든 상황
우리로선 오히려 대응시간 번 것”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퇴진으로 기재부 1차관이 ‘경제사령탑’을 맡게 되면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대미 관세협상의 경우 협상 대표가 빠지면서 목표 시한(7월8일) 내에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협상을 서둘 필요가 없는 만큼 우리로선 차분히 대미 협상 시나리오를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5일 기재부에 따르면 향후 경제관계장관회의(경장)는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김범석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내달 3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정상 가동된다. 경장은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장관급 회의체로, 최근에도 ‘여수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원계획’, ‘범정부 빈집관리 종합계획’ 등의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김 직무대행은 지난 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통상·인공지능(AI) 지원 등 각종 현안을 거론하면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관이 경장을 주재하게 되면서 정책 리더십이 떨어지고, 부처 간 조율 기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총리의 공백에 따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 다른 관계자는 “기재부 부총리의 정책 조율은 부총리라는 자격 외에 행정고시 선배라는 점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다”면서 “기재부 1차관은 다른 장관과 비교해 기수도 낮은 데다 예산 업무도 하지 않아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외환시장 협의체인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일명 F4 회의)도 흔들릴 수 있다는 예측이다. F4 회의는 12·3 불법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전례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외환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에 실시간 대응하며 상황을 안정시켜 왔다. 김 직무대행이 지난 2일 F4 회의에 참여했지만, 기존 최 전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형성했던 ‘투톱 리더십’의 연속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대미 관세협상도 덜컹거릴 가능성이 높다. 한·미 장관급 ‘2+2 통상협의’를 총괄하는 최 전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입장에서는 협상 카운터파트가 사라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최 전 부총리는 미 재무장관과 함께 2+2 통상협의에서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의제를 정리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가 미국 측과 상호관세 유예기한인 7월8일까지 상호·품목별 관세 폐지를 목표로 마련키로 한 ‘7월(July·줄라이) 패키지’ 역시 도출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우리로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 쪽 협상 대표인 최 전 부총리가 사퇴한 만큼 미국도 협상을 재촉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데,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 부총리가 사퇴한 상황에서 미국도 지난번 했던 협상 이상의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로서는 시간을 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재부, 외교부 실무진을 중심으로 미국의 요구와 관련해 시나리오 3∼4개를 짜고,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실무적 차원의 대안들을 잘 준비해야 한다”면서 “차기 정부가 준비기간이 부족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부터 예상 시나리오를 잘 짜고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장, 대경장(대외경제장관회의) 등은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기재부 자체 업무는 각 실·국장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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