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집회에서 “정말 일을 못하는 연방준비제도 인사가 있다. 난 그보다 금리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연방준비제도(연준∙Federal Reserve·Fed)의 특정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수차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비판해왔기에 이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파월 의장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1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많은 이가 선제적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미스터 투 레이트’(의사 결정이 매번 늦다는 뜻)이자, 중대한 실패자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있을 수 있다”고 썼었다. 또 그보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역시 트루스소셜에 “파월 해임은 아무리 빨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올리기도 했다. 아울러 “실제 해임이 가능하냐”고 묻는 취재진에게는 “내가 요구하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으로 미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시장이 요동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에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이 과도하게 보도하는 것”이라며 “해임할 생각이 없다”고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파월 흔들기가 112년 연준 역사상 전례 없는 위협으로 보고, 이 같은 방식은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훼손하고, 인플레이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며, 채권 금리의 상승과 달러 가치의 하락, 주식 투매 등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4일 “예상했던 것보다 관세율 인상폭이 상당히 크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고물가와 저성장을 불러올 것은 분명하다”며 트럼프 정책에 우회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당분간 금리 인하 계획이 없음을 밝힌 셈이다.
금리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의장의 공방으로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연준에 집중되고 있다. 사실 연준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앙은행이자, 강력한 통화정책 수립기관으로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었다. 연준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기축통화국 미국의 영향력 덕분에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BIS)과 함께 세계 금융의 양대 주춧돌로 여겨진다.
연준은 통화정책 수립 및 기준금리 결정, 미 국채를 담보로 하는 달러화 발행 등이 주요한 역할로 알려졌지만, 실제 훨씬 더 많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은행 시스템 감독 및 규제,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 시스템 감시 및 리스크 분석, 금융 안정 보고서(Financial Stability Report) 발간, 지급결제 시스템 운영 및 혁신, 해외 중앙은행·BIS·국제통화기금(IMF) 등과의 협력을 담당하는 국제 금융 및 외교 등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으로 치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의 주요 기능을 섞어놓은 모습이다.
연준은 크게 12개 연방준비은행, 연방정부 내 독립기관인 연준이사회(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FRB),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FOMC) 등 3개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연준 시스템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FRB 이사 7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친다. 이들의 통화정책 결정은 철저히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이러한 권한 덕에 이사회 대표인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의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연준 이사회를 지원하기 위한 이사회 조직에는 사무처와 각 실∙국이 존재한다. 연준 이사회 사무처는 한국과 비교하면 금융위 사무처 및 한은 기획협력국과 비슷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준은 한국 경제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하다. 한국과 지난 2008년 첫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이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600억달러 규모까지 확대한 바 있다. 국가적 경제위기 시 외화가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최후의 안전판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월 의장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시 지명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은 내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통화·재정정책의 합의도출형 리더”라며 “상원은 신속하게 그의 인준안을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하는 등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전례 없는 연준 의장 ‘흔들기’를 보며 1기 당시 트럼프의 발언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연준이 그만큼 세계 경제에 미치는 힘이 막강하기에 자주 회자된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금융 중심지를 추구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정치 문제가 경제를 흔드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연준과의 협력 확대가 꼭 필요하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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