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장 속에서 발생하는 곰팡이가 전세계 성인 3명 중 1명이 겪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치료에 새로운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의 장내에서 분리한 곰팡이를 지방간을 앓는 쥐에 투여하자 간 염증과 섬유화가 완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3일 학계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대 미생물학 연구진은 사람의 장에서 추출한 '푸사리움 포이텐스(Fusarium foetens)' 곰팡이가 지방간 질환의 주요 증상을 줄이는 데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소개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인 'MASH' 발병을 유도한 실험용 쥐에 인간의 대변에서 분리한 푸사리움 포이텐스 곰팡이를 투여하자 간 부종과 섬유화 등 병증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이번 실험의 핵심 질환인 MASH는 이른바 대사기능 장애 관련 지방간염이라고 불린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진행되는 질환으로, 술이 아닌 과도한 열량 섭취로 간에 지방이 쌓이며 발생한다.
MASH의 발병 원인은 얼핏 보면 단순하지만 병리학적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다. 간 세포에 축적된 지방이 산화하면서 지방에 독성이 생기고 간 세포를 손상시킨다. 이로 인해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도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질환 발생 과정이 복잡하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 흔히 활용되는 단일 표적 치료제로는 모든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MASH 치료제는 현재 단 하나뿐이다. 지난해 3월 미국 마드리갈파마슈티컬스의 MASH 치료제 '레즈디프라'가 세계 최초로 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유일한 MASH 치료제도 그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MASH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인체 장내 곰팡이라는 예기치 않은 존재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연구진은 쥐의 간 대사를 정밀 분석한 결과 곰팡이가 '세라마이드(ceramide)'라는 지방 분자의 합성을 억제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세라마이드는 장과 간 사이의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MASH 환자에게서는 이 수치가 과도하게 증가해 간 기능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곰팡이가 분비한 특정 분자는 'CerS6'라고 불리는 장 내 세라마이드 생성 단백질의 작동을 억제해 이 악순환을 끊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곰팡이 자체보다도 곰팡이가 만들어낸 특정 물질이 치료 효과의 열쇠였다는 점이다. 이 분자는 다른 곰팡이 종에서도 포착된 적 있지만 지방간에 대한 작용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장창타오 베이징대 교수는 "푸사리움 포이텐스 곰팡이가 생산하는 다양한 분자를 추가로 분석해 MASH 임상 치료에 효과적인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단순히 새로운 치료법 발견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박테리아가 대부분인 인간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서 수가 적고 배양도 어려운 특정 곰팡이 종을 분리해내는 기술적 성과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캐나다 최고의 연구대학으로 꼽히는 캘거리대학교의 미생물학자 마리클레어 아리에타 박사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장내 곰팡이는 박테리아의 바다에 섞여있어 분리와 배양이 매우 어렵다. 이들 연구진이 개발한 곰팡이 배양 플랫폼과 거기서 나타난 치료 효과는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아리에타 박사는 MASH가 간 외에도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주는 만큼 푸사리움 포이텐스 곰팡이가 다른 장기에 미치는 영향도 후속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병을 악화시키는 것으로만 알려졌던 장내 곰팡이가 되려 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번 발견은 인간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복잡성과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이 미생물들이 단순한 공생체가 아닌 치료 물질의 공장일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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