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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의 부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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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02 13:56:14 수정 : 2025-05-02 13: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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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900㎞쯤 떨어진 볼가강(江) 서안에 볼고그라드라는 대도시가 있다. 도시를 에워싼 볼고드라드주(州)의 주도에 해당한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차리친’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런데 공산주의 혁명으로 무너진 제정을 대신한 소련 정권의 제2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 집권기인 1925년 도시명이 ‘스탈린그라드’로 바뀌었다. 이는 전적으로 스탈린의 우상화를 위한 조치였다. 소련 최고 지도자의 이름을 딴 도시답게 스탈린그라드는 대규모 중공업 단지가 들어서는 등 급속히 발전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1년 6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이끄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략했다. 처음엔 독일군의 연전연승이었으나 1941∼1942년 겨울을 거치며 소련군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다. 1942년 8월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다. 히틀러는 그가 증오하는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를 꼭 점령하고 싶어했다. 소련군은 같은 이유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스탈린그라드만은 지켜야 했다. 이듬해인 1943년 2월까지 벌어진 치열한 전투는 결국 소련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군은 약 40만명, 소련군은 무려 110만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53년 스탈린이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때까지 스탈린은 나치 독일에 맞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다. 하지만 후임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권력을 장악함과 동시에 스탈린 격하(格下) 운동에 나섰다. 집권 기간 저지른 온갖 범죄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며 스탈린은 하루아침에 독재자로 전락했다. 2차대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그라드 역시 1961년 지금의 볼고드라드로 명칭이 변경됐다. 오늘날 볼고그라드에는 1967년 세워진 87m 높이의 승전 기념비가 남아 스탈린그라드 전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1942∼1943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에 이긴 것을 기념해 1967년 러시아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 세워진 ‘모국(母國)이 부른다’라는 이름의 승전 기념비. 전체 높이가 무려 87m에 이른다. 위키피디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29일 볼고그라드를 전격 방문했다. 러시아의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제80주년 전승절(5월9일)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푸틴은 이 도시의 국제공항 이름을 기존 볼고그라드 공항에서 ‘스탈린그라드 공항’으로 바꾸는 법령에 서명했다. 옛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른 덕분에 나치 독일을 물리칠 수 있었고 종국에는 연합국의 2차대전 승리도 가능했다는 점을 미국 등 서방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때 최악의 독재자로 몰려 소련 그리고 러시아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던 스탈린이 이를 계기로 부활할 것인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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