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자료로 만든 정책, 그 피해는 국민 몫

정부 국정과제의 평가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일화다. 보고를 다 마쳤을 때 아직도 생생한 대통령의 의외 첫마디는 ‘이거 다 믿어도 되죠’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일이다. 당시 황우석 파동으로 한국 사회가 과학적, 윤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핵심은 2005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논문의 연구 결과 대부분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역사의 반복인지 조작의 악습이 다시 드러났다. 지난 17일 감사원은 2년7개월에 걸쳐 진행한 문재인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재인정부 5년 임기 대부분 기간에 걸쳐 소득·주택·고용에 관한 통계가 청와대의 압박과 지시로 조작·왜곡됐다고 밝혔으며 문재인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이 연루됐다고 한다.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결과를, 통계자료와 같은 증거를 기반으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주먹구구식, 근거 없는 관행에 기대어 자의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증거를 토대로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발굴하여 최적 안을 집행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며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사실을 흐림으로써 국민의 잘못된 인식이나 판단을 유도하는 데 있다. 보고서나 전문가 의견과 같은 정성적 자료에 비해 통계 데이터와 같은 정량적 자료는 객관적이며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타당한 방법론을 토대로 수집과정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게 생명이며, 그렇게 수집된 자료가 중요하게 활용된다.
국내외 평가의 경우 가능한 한 객관적이며 엄밀한 자료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필요시 정성적 자료를 보완하여 해석에 참고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설계를 하더라도 완벽한 데이터는 없으며 오류가 발생한다. 원자료 공개나 반복 측정 등과 같이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경계해야 할 일은 의도적으로 자료를 조작하려는 사악한 행동이다.
정부가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는 다양하나 상대를 설득하여 추진하려는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정책 효과를 부풀려 국민에게 홍보하고 정부가 잘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래전 정부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정책은 실패 확률이 성공보다 높다는 필자의 말에 한 분이 언급하길 ‘정부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습니다’였다. 수강생들의 한바탕 웃음으로 해프닝처럼 지나갔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위험성이 한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정책이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건가.
정부가 달콤한 독약 같은 자료 조작을 통해 찰나의 눈가림을 할 수 있겠으나 그 피해는 장기적으로 국민의 몫임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경우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등 잘못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자체가 범죄행위이다. 학술연구에서 자료 조작을 포함한 표절행위를 엄하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 정책은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하며, 그 핵심은 정확한 통계자료 확보이다. 결국 자료(데이터)가 아니라 이것을 수집하고 해석하여 활용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초거대 인공지능(AI) 구축이 행여 데이터나 알고리즘 조작 등을 통해 거짓선동과 불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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