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佛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혀
“나는 결백… 항소심 판결 신속히 내려져야”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전 대표가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재판부는 징역형과 더불어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선고가 늦어지는 경우 르펜은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에야 피선거권 박탈이 가능한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1심이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는 경우 바로 효력이 발생해 항소심 선고 때까지 유지된다.

3월31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프랑스 1심 법원은 이날 르펜의 공금 횡령 의혹 사건 1심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4년(전자팔찌 착용 상태로 2년간 가택 구금 실형)에 벌금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 그리고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했다. 르펜은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보좌진을 채용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보조금을 받아낸 뒤 실제로는 자신의 소속 정당인 국민전선(현 RN)에서 일한 당원 급여 지급 등에 쓴 공금 횡령 및 사기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르펜은 선고 직후 “믿을 수 없다”고 내뱉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밤 프랑스 방송 채널 TF1에 출연한 르펜은 “나는 결백하다”며 “이번 판결은 내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 내 항소를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사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2년 뒤인 오는 2027년 4∼5월 치러질 예정이다. 르펜은 앞서 2012년, 2017년, 2022년 세 차례 대선에 출마했다. 모두 낙선하긴 했으나 2017년과 2022년의 경우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과 나란히 결선에 올라 각각 42%, 41%라는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프랑스 국민의 최소 40% 이상이 그를 지지했다는 뜻이다. 르펜이 이끄는 RN는 2024년 7월 총선에서 하원 577석 중 126석을 얻으며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 마크롱의 중도 연합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정가에선 2027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단연 르펜이 꼽힌다.

이런 르펜이 ‘사법 리스크’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 정치권이 요동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르펜 본인은 “내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항소심 판결이 신속히 내려지길 간절히 바랄 것”이라며 “나는 30년 동안 불의에 맞서 싸워왔고 앞으로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BBC는 르펜의 2027년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내다봤다. 항소심 재판부가 심리에 속도를 내면 이르면 2026년 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이 1심의 유죄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르펜의 사법 리스크는 오히려 더욱 커진다.
일각에선 르펜이 대권 도전의 꿈을 접고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를 대타로 삼아 대선에 출마시킬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그러나 현재 56세인 르펜과 달리 29세의 바르델라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엔 너무 젊다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르펜처럼 사법 리스크를 안은 채 대선에 도전해 결국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르펜을 옹호하고 프랑스 사법부를 비난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으로부터 “르펜 판결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선 “르펜은 5년간 선거 출마가 금지됐는데 그는 유력 후보”라며 “매우 큰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24년 11월 대선 이전에 4가지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상황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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