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권력다툼·사익에 몰두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본 것처럼
넓은 미래 향해 나아가야 할 때
딱 35년 전 일이다. 1990년 2월13일,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탐사하는 임무를 마무리하고 태양계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목성, 토성, 천왕성과 해왕성의 근접 촬영을 마쳤기에 더 이상 행성들을 촬영할 필요가 없었지만 칼 세이건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보이저 1호로 하여금 태양계를 떠나기 전에 지구를 마지막으로 찍게 하자.”
보이저 1호는 태양으로부터 61억㎞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태양빛이 렌즈에 산란되며, 지구는 빛줄기 사이의 0.12픽셀의 작은 점으로 찍혔다. 칼 세이건은 그 희미한 점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다. 세이건은 사진을 보며 인간의 오만과 권력의 덧없음을 이렇게 경고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집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 모든 역사의 주인공들이 이 작은 점 위에서 살아왔다. 우리의 분쟁과 이념, 전쟁과 증오가 모두 이 작은 무대 위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여전히 35년 전 그날과 똑같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점에서도 한 점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돌아보면 세이건의 경고는 더 크게 들려야 한다. 지난해 12월3일 한국 시민들은 불법 계엄 사태라는 상상하지 못할 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취임 선서를 한 권력자가 헌법에 반하는 계엄을 선포했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하여 법치를 무너뜨리려 했다. 현대 정치사에서 씻기 힘든 민주주의의 후퇴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지만, 극우 세력과 여권 정치인들은 여전히 그를 지지하며 과거 독재의 잔재에 기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법원을 점거하고 파괴하더니 인권위원회를 장악하고 또 헌법재판소를 불태우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그들은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며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려 한다. 민주주의 미래보다는 눈앞의 권력을 지키는 데 급급한 그들의 행동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
여기에는 무책임한 언론의 보도 행태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많은 언론이 공정과 균형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민주주의의 적들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겨울이야”라는 주장과 “지금 한국은 여름이야”라는 상반된 주장이 있을 때 두 주장을 공평하게 보도하는 게 맞을까? 그건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을 학교에서도 가르치자는 말과 마찬가지다.
우주의 시각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며 끝없는 다툼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작은 점 위의 모든 생명은 결국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 더 큰 시야와 책임감이 필요한 지금, 한국의 여권 정치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 갇혀 있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보는 대신, 협소한 권력 다툼과 개인적 이익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35년이 지난 지금 지구에서 약 240억㎞ 떨어진 곳에서 인류가 만든 가장 작은 탐사선 보이저 1호는 우주 깊숙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만약 오늘 보이저 1호가 지구를 찍는다면 0.03픽셀에 불과할 것이다. 보이저 1호는 자기 카메라에 감지도 되지 않는 지구가 사라졌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살고 있다. 심지어 보이저 1호는 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미몽에 빠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보이저 1호는 언젠가 외계 문명과 만날지도 모르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별의 곁을 스쳐 지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바라봤던 35년 전 그날처럼 우리도 더 넒은 시각에서 우리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작은 다툼에서 벗어나 더 큰 시야와 책임 있는 정치가 필요할 때다.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같은 허튼소리를 하지 말고 책임을 분명히 정리하고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12월3일은 어쩌면 2월13일보다 더 큰 무게로 우리 가슴에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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