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황대헌 피해자’ 박지원-린샤오쥔, 하얼빈에서 한중 에이스로서 ‘명승부’ 연출…내년 밀라노에서도 선의의 경쟁 이어갈까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5-02-11 08:00:00 수정 : 2025-02-11 13:31:54

인쇄 메일 url 공유 - +

박지원과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은 1996년생 동갑내기다. 어린 시절부터 국내 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친구 사이다. 이제는 중국으로 귀화해 린샤오쥔이 됐지만, 지금도 서로를 보며 자극을 받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친구 사이다.

 

9일(현지 시간)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 경기에서 박지원과 린샤오쥔이 몸싸움을 벌이며 질주하고 있다. 뉴시스

2025 하얼빈 아시안게임에서도 박지원과 린샤오쥔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첫 번째 맞대결이었던 지난 8일 혼성 2000m에서는 박지원이 먼저 웃었다. 린샤오쥔이 선두로 달리다 결승선까지 두 바퀴를 남기고 혼자 넘어졌고, 그사이 박지원이 추월해 한국 선수단에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열린 남자 1500m에서도 박지원의 승리였다. 박지원이 금메달, 린샤오쥔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린샤오쥔은 임효준이라는 이름으로 태극마크를 달던 시절만 해도 1000m나 1500m 등 한국 강세 종목인 중장거리에서 강세를 보였다. 2018 평창 올림픽에서도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시상대에 오르며 손가락으로 숫자 1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으로 귀화한 이후엔 중국의 강세 종목인 500m 단거리가 주종목이 됐다. 8일 마지막 일정이었던 500m 결승에서는 린샤오쥔의 승리였다. 박지원이 결승선까지 2바퀴를 남기고 선두였던 린샤오쥔과 쑨룽을 제쳤지만, 린샤오쥔이 마지막 바퀴 첫 번째 코너에서 박지원을 제친 뒤 결승선을 맨 먼저 끊으며 금메달을 따냈다. 린샤오쥔이 오성홍기를 달고 국제종합대회에서 처음 따낸 금메달이었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박지원, 장성우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대표팀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코치진과 기뻐하고 있다. 뉴스1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린샤오쥔은 중국 대표팀의 전재수 코치에게 달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박지원도 엎드려 울고 있는 친구 린샤오쥔에게 다가가 등을 두들기며 축하를 전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두 선수는 인터뷰를 통해 서로에게 리스펙트를 전했다. 린샤오쥔은 친구인 박지원을 보며 동기부여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내 주 종목은 1,500m인데, 이젠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지원이는 동갑인 친구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훈련해왔는데, 지원이가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고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동기부여를 많이 얻었다. 경기장에서는 경쟁자지만, 밖에서는 친구라 서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8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을 마치고 우승한 린샤오쥔과 은메달을 획득한 박지원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박지원도 친구 린샤오쥔에게 “서로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했어요”라며 “경기가 끝나고, 경기에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존중했다. 넘어지는 부분도 많았으니 다친 데는 없는지 서로 물어보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고 린샤오쥔과의 맞대결 소감을 밝혔다. 린샤오쥔이 자신을 보며 동기부여를 얻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박지원은 “임효준 선수가 그렇게 얘기해줘서 굉장히 고맙다. 운동선수가 다른 운동선수를 바라보며 동기부여를 얻는다는 건 굉장히 좋은 것 같다”면서 “나도 다른 선수들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많이 얻는다. 또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든다”고 덧붙였다.

 

1996년생 동갑내기 친구로서 이번 대회에서 때로는 서로를 밀치면서까지 치열하게 맞붙은 박지원과 린샤오쥔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다. 후배인 황대헌에 의해 피해를 입은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린샤오쥔이 중국으로 귀화를 하게 된 것도 황대헌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쓴 게 결정적이었다. 사건은 201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천선수촌에서 남녀 쇼트트랙 선수 10명이 웨이트장의 암벽 등반기구에서 쉬던 중 장난을 쳤다. 황대헌이 먼저 여자 선수들의 엉덩이를 때려 떨어뜨리는 장난을 먼저 시작했고, 재밌게 여긴 임효준도 황대헌의 허리를 잡아당기다 실수로 바지가 일부 벗겨져 신체 일부분이 노출됐다. 본인도 여자 선수들의 엉덩이를 때렸으면서 황대헌은 뒤늦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임효준을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결국 남녀 국가대표 14명이 1개월간 진천선수촌에서 퇴촌됐고, 그해 8월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황대헌의 신고로 인해 경찰 수사까지 이어졌고, 임효준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300만원에 40시간 성폭력 치료 이수명령을 받게 됐다. 자격정지 1년에 벌금형까지 받게 된 임효준은 2019~2020시즌은 물론 2020~2021시즌 국가대표 선발전도 참여할 수 없게되어 두 시즌을 쉬게 됐고, 결국 임효준은 2020년 6월 중국으로 귀화하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어가게 됐다. 임효준 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났고,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미 임효준은 린샤오쥔이 된 이후였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혼성 2,000m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 박지원이 선두로 달리고 있는 중국 린샤오쥔을 쫓고 있다. 린샤오쥔은 이 경기에서 선두로 달리다 넘어졌다.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에서 박지원이 역주하고 있다. 뉴스1

박지원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메달보다 더 치열하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대표팀에 뽑힌 것은 데뷔 시즌인 2015~2016시즌과 2019~2020, 2022~2023, 2023~2024(2023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 선발), 2024~2025시즌까지 다섯 시즌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아직 올림픽 출전 경험이 전무하다.

 

늘 불운에 시달리며 올림픽 출전의 꿈도 이뤄내지 못한 박지원은 20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고, 2022~2023시즌, 2023~2024시즌에 쇼트트랙 월드컵 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그 재능에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해 아직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던 박지원에게 2024 세계선수권대회는 무척 중요했다. 아직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올림픽,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 입성하기 위해선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한 병역 혜택이 꼭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세계선수권 우승을 통해 2024~2025시즌 국가대표 자동 선발이 되는 게 중요했다. 유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진했던 박지원에겐 세계선수권 우승이 가장 확실한 태극마크 획득 방법이었다.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장성우(오른쪽)가 은메달을 획득한 박지원과 태극기를 두르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500m 시상식에서 박지원이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박지원은 2024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동료인 황대헌에게 두 차례나 ‘팀킬’을 당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1500m 결승에서는 선두에 있던 박지원을 황대헌이 밀어버린 뒤 추월했고, 1000m 결승에서는 박지원이 추월하자 황대헌은 박지원을 손으로 밀어버렸다. 두 번의 ‘팀킬’의 결과는 황대헌의 페널티였다. 황대헌의 무리한 팀킬에 박지원은 목부상까지 입었다.

 

그렇게 절정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팀 동료의 방해로 세계선수권 2연패에 실패한 박지원은 2024~2025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 1,2차 선발전에서 총 92점을 따내며 당당히 1위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2000m 혼성과 1500m 금메달을 통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의 길이 열렸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 가운데), 은메달을 획득한 박지원(왼쪽). 동메달을 차지한 장성우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관심은 박지원과 린샤오쥔이 한국과 중국의 에이스로서 내년 밀라노에서도 뜨거운 명승부를 이어갈지에 쏠린다. 이번 하얼빈에서 보여준 기량을 감안하면 밀라노에서도 남자 개인전은 박지원-린샤오쥔의 ‘2파전’ 양상이 예상된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즈나 정세비 '빛나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