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안전불감증이 부른 예견된 인재(人災)로 굳어져 가고 있다.
착륙제동장치와 조류 충돌 레이더, 열화상 탐지기 등 비행안전에 필요한 시설 설치는 뒷전인 채 대형 흉기나 다름 없는 콘크리트 장벽은 보강공사까지 해가며 견고하게 구축해 참사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일 전남도와 항공공항공사에 따르면 사고가 난 무안국제공항에는 개항한 지 17년이 지나도록 긴급 착륙 제동장치 중 하나인 '이마스'(EMAS·활주로이탈방지시스템)가 미설치된 상태다.
이마스는 항공기가 오버런 등으로 활주로를 벗어날 경우 안전하게 정지시키기 위해 활주로 끝에 설치되는 시스템이다. 항공기 무게에 따라 부서지는 경량 소재로 구성돼 있다. 항공기가 진입하면 해당 소재가 파손되면서 항공기가 늪에 빠진 듯 속도가 급감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활주로 끝단∼로컬라이저 구간에 강제 제동장치인 이마스가 설치됐더라면 충돌 전 극적으로 정지되거나 충격파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미국 찰스턴 예거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한 보잉 737-700 여객기가 이마스 덕분에 안전하게 정지하는 등 곳곳에서 효과가 입증되면서 미국연방항공청(FAA)은 "71개 공항, 121개 활주로에 이마스가 설치됐다"고 밝혔으나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국내 14개 공항 중 이마스가 제대로 갖춰진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종단안전구역 단축 조건으로 이마스 설치를 권고하고 국토교통부(국토부)도 보고서를 통해 이마스 설치의 필요성에 공감했으나 실제 설치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무안공항에서는 최근 6년 간 10건의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사고가 발생했고 발생률만 놓고 보면 14개 공항 중 가장 높지만 예방설비인 탐지레이더와 열화상 탐지기는 모두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위험시설인 활주로 끝부분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 지지를 위한 하부구조물)은 현대화사업과 보강공사 등을 통해 되레 견고하게 구축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공항공사는 2021년 4월 '무안공항 계기착륙시설(ILS) 현대화사업' 입찰공고를 통해 이번에 사고가 난 19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 무려 127t톤의 콘크리트를 사용토록 했다.
2023년에는 개량사업을 통해 길이 40m, 폭 4.4m, 두께 30㎝의 대형 콘크리트 상판을 둔덕 상부에 깔고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그 안에 심도록 했다.
이미 19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둔덕 안에 촘촘히 박힌 상태에서 추가로 상판까지 얹어 거대한 철옹성과 같은 구조물을 완성했고 사고 여객기는 흙으로 만들어진 둔덕인 줄 알고 불시착을 시도했다가 되레 폭발사고 최악의 참사를 맞이하고 말았다.
국토부 측은 "로컬라이저의 안정적인 운용 등을 위해 태풍이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는 지지대를 만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와 해당 공사 업체 관계자는 "20㎏ 안팎의 안테나를 지탱하기 위해 그토록 거대하고 단단한 구조물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 투성이다" "범죄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이번 참사를 계기로 긴급제동장치와 조류 충돌 예방시스템을 전향적으로 설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활주로 추가 연장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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