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 일어나야겠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개표 무산 이튿날인 8일 여의도 국회 앞에는 오후 5시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 1만3000여명, 주최 측 추산 10만여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이들은 이틀째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에 맞춰 춤추는 젊은 집회 참여자들도 많았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은 깃발로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서 일어나야겠냐”고 호소했고, ‘응원봉연대’는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이라고 외쳤다.
'방구석 게임매니아 연합' 소속이라고 등에 붙인 한 시위자는 뉴스1에 “불안해서 집에서 게임도 못하겠다”는 문구를 더하고, 길바닥에서 노트북으로 게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민들은 로제의 ‘아파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했다. 친구들이나 형제, 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젊은 층이 많았다. ‘돈 없고 병든 예술인 연합’, ‘전국 소떡소떡 찌르기 연구협회’, ‘강아지 발냄새연구회’,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다’, ‘우리나라 정상영업 합니다’ 등 기발한 내용의 깃발이 등장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쾌한 이색 깃발의 시작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시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국민 대다수가 분노하며 그간 정치에 무관심했거나 뚜렷한 정치적 지향이 없었던 일반 시민들도 촛불집회에 나오고 있음을 반영하면서 갖가지 깃발이 등장했다.

당시 3차 촛불집회 때 광화문광장에 ‘장수풍뎅이연구회’라는 뜻밖의 단체 이름이 혜성처럼 나타났고, 누리꾼들이 큰 관심을 보이며 화제로 떠올랐다. 정치적 지향이나 진영을 알 수 없는 장수풍뎅이연구회란 이름에 누리꾼들은 “누가 장수풍뎅이연구회를 화나게 했나” “장수풍뎅이연구회를 분노하게 한 박 대통령은 하야하라” 등의 반응으로 호응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의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은 서울 여의도 일대 카페나 식당에 ‘선결제’를 해두는 방식으로 저마다 마음을 보탰다.
엑스(X·옛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전날부터 국회 근처 카페에 음료 선결제를 해뒀다는 글이 이어졌다. 게시글 작성자들은 “몸은 해외에 있어도 마음은 함께 하고 싶어서” “집회에 참여가 힘든 상황이지만 힘을 보태고 싶어서” 참석자들이 마실 수 있도록 인근 가게에 음료값을 미리 결제한 뒤 가게 주소 등을 안내했다.

SNS서 일부 택시 기사들이 집회 참여를 위해 국회로 가는 손님에게 요금을 받지 않았다는 사연도 전해졌다. 한 엑스 이용자는 “기사님이 국회 앞에 내려주시고 2분 뒤에 결제 취소를 하셨다”며 택시 호출 앱에서 2만3500원의 택시비가 결제 취소된 내역을 캡처해 첨부했다.
저서 ‘천 개의 파랑’ ‘모우어’ 등을 펴낸 천선란 작가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택시 타고 여의도 가는 중인데 택시 기사님도 좀 있다 여의도에 오신다기에 우리 (일행의) LED 촛불을 나눠드렸다”며 “(그러자) 택시비를 안 받으시겠다며 미터기를 끄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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