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최근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에 자산 재평가 및 매각, 투자 축소 등을 자구책으로 제시한 데 이어 대규모 임원 인사도 단행했다. 케미칼·쇼핑 등의 실적 악화에 대응해 인사 교체도 위기 극복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다.
전날 발표된 롯데그룹 임원 정기인사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롯데그룹은 케미칼, 면세점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36%인 21명을 교체하고 전체 임원의 22%를 퇴임시켰다.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수장이 대다수 교체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롯데그룹 인사 키워드는 ‘고강도 쇄신을 통한 경영체질 개선’으로 꼽힌다.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놓으며 유동성 위기를 잠재우는 동시에 인사로도 위기 극복 의지를 보였단 것이다.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화학사업군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적자 수렁에 빠진 화학사업군은 최고경영자(CEO) 13명 중 10명이 바뀌었다. 화학사업군 총괄을 맡았던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이 1년 만에 내려오고 이영준 롯데케미칼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내정됐다. 이 신임 사장은 기초소재 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위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는 작업을 맡았다.
롯데그룹만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 극복 의지를 인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발표된 LG그룹 임원 인사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유임됐는데 이 역시 신사업을 원활히 추진할 목적으로 이뤄진 인사로 평가됐다. 신 부회장은 2021년 LG화학의 3대 신성장동력으로 전지소재, 친환경소재, 신약 세 가지를 제시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존 범용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고 신성장동력 분야 매출을 기존 6조억여원에서 40조원으로 2030년까지 키우겠다는 목표도 지난해 발표했다.
신 부회장 유임 역시 석유화학 업계 불황을 타개할 고민으로 시작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3M 수석부회장이던 신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18년 취임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다. 통상환경 변화, 원가 상승, 수요공급 불균형 등 석유화학 업계가 마주한 불확실성이 내년에도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신사업 육성이란 과제를 해결하란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이후 4개 분기 연속 적자인 한화솔루션도 지난 7월 예년보다 1개월 이상 빨리 사장단 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과 큐셀 부문, 여천NCC 3개 계열사 모두 대표이사가 새롭게 선임됐는데 교체 배경으로 사업구조 개선 및 경쟁력 강화를 제시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역시 중국발 공급 증가와 글로벌 수요 감축 등으로 석유화학 업계가 겪는 수익성 둔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국내 주요 석유화학 회사 중에서도 적자 폭이 유독 크다. 롯데케미칼은 각종 합성수지 제조 원료가 되는 기초유분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나 이 시장이 특히 중국발 공급 과잉에 원가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석유화학 부문을 어떻게 개선할지 회사 차원에서 고민 중”이라며 “전날 기업설명회(IR)에서 발표한 지출 감축도 일단 늦출 수 있는 투자를 보류하는 식으로 회사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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