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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티 리더십은 ‘자유에의 갈망’서 시작되었다

입력 : 2024-11-30 06:00:00 수정 : 2024-11-28 2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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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서 보낸 어린시절부터
통일독일총리 재임기까지
인생역정·국제적 사건 회고

“소년단으로 소련 다녀온 뒤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 버려

트럼프, 사업가 눈으로 판단
협력통한 번영 증진 회의적”

자유: 1954-2021년을 회상하다/ 앙겔라 메르켈·베아테 바우만/ 박종대 옮김/ 한길사/ 3만8000원

 

“(내가) 트럼프와의 대화에서 내린 결론은 분명했다. 전 세계 공통의 문제를 그와는 함께 해결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치에 뛰어들기 전 부동산 사업을 했는데, 이후에는 모든 것을 부동산 사업가의 눈으로 판단했다. 모든 부동산은 단 한 사람에게만 양도될 수 있다. 누군가 그걸 얻지 못하면 남이 그걸 얻는다. 그는 세계도 이런 식으로 보았다. 그는 협력을 통해 모두의 번영이 증진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7년 3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돌아가는 귀국 비행기에서 이같이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제로섬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메르켈은 2005년 11월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돼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10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유럽을 넘어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 지도자였다. 재임 기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유로존 위기, 유럽 난민 사태, 팬데믹 등의 국면에서 독일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동독 출신 여성이 어떻게 16년 동안이나 통일 독일의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특별한 스캔들이나 총선에서 패하지 않았음에도 왜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을까.

 

‘무티(엄마) 메르켈’로 불리며 퇴임 이후에도 독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오랜 보좌관이자 정치 고문인 베아테 바우만과 함께 자신의 자서전을 펴냈다. 2021년 12월 퇴임한 뒤 약 3년 만으로, 700쪽에 달하는 자서전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32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앙겔라 메르켈·베아테 바우만/ 박종대 옮김/ 한길사/ 3만8000원

메르켈은 책에서 동독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청소년기, 대학 시절과 학업, 정치 인생의 시작과 하원의원 생활, 기민당 대표와 총리 당선, 총리 재직 시절 등의 인생 역정과 주요 사건 등을 차분히 들려준다. 이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나, 탈원전과 난민 수용,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등 지금 세상을 만든 결정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진실도 들려준다.

 

책에 따르면, 그가 공산주의 체제에 희망을 버린 것은 공산주의 소년단 멤버로 소련을 다녀온 뒤였다. 소련의 현실은 선전하는 내용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오히려 반체제적 인쇄물을 비밀리에 배포한 혐의로 국가안전부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동독 시절부터 그에게 자유에의 갈망은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가 대학 진학 당시 물리학을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내가 물리학을 선택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물리학은 자연과학이었다. 동독 정권도 자연과학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의 인생이 바뀐다. 독일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는 베를린 과학아카데미를 떠나서 시민단체 ‘민주주의 각성’에 가입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1990년 기민당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게 되고, 1991년 헬무트 콜 총리에 의해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됐고 1994년에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유럽을 넘어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 지도자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자서전이 32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사진은 메르켈의 대학시절 모습. 한길사 제공

하지만 1999년 물러난 콜 전 총리의 불법 기부금 수령을 비판한 뒤 기민당 당대표에 취임했고, 2005년 5월 조기 총선에서 기사당과의 연합을 통해서 사민당 정권을 무너뜨린 뒤, 기사당에 사민당까지 포괄하는 대연정을 통해서 독일 최초의 여성·동독 출신 총리가 됐다.

총리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3.3% 수준이었던 재정 적자 상태를 물려받은 그는 공무원 임금 삭감과 연금 개시 시점 상향 조정 등 강력한 개혁을 통해 난관을 돌파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때에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에 강력한 자구책 마련이라는 조건을 붙였고, 2015년 9월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리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선보였다.

하지만 2017년 3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악수 패싱’ 논란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며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특성을 보인 정치인이 그를 사로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푸틴에게 푹 빠진 듯했다. 이후 몇 해 동안 나는 트럼프가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성향의 정치인들에게 매료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트럼프가 내 논거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대개 뭔가 새로운 비난거리를 찾기 위한 목적밖에 없었다. 내가 제기한 문제의 해결은 그의 목표가 아닌 듯했다.”

2022년 시작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내막도 책에 담았다. 그는 2014년 크림반도 분쟁 당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와 대화를 중재했지만,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대화 노력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철학 또는 태도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을 결정한 뒤,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먼저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와 방법을 도출한 뒤, 이 가운데 가장 올바른 것을 선택해 추진한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같은 현실주의는 ‘유럽의 병자’로 불린 독일을 ‘유럽의 엔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1∼2부에서 동독에서의 삶을, 3부에선 독일 통합의 과정을, 4∼5부에선 총리로서 독일을 이끈 경험을 담았다. 그런데 그에게 자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자신의 회고록에 ‘자유’라는 제목을 붙여야만 했을까.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든, 내가 평생 천착한 문제다. 나에게 자유란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아내고, 그 한계까지 나아감을 의미한다. 또한 정계 은퇴 뒤에도 배움을 중단하지 않고 멈춤 없이 계속 나아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나에게 자유란 내 인생의 새 장을 연다는 뜻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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