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25년 전인 1999년 10월28일 이근안 전 경기경찰청 경감이 검찰에 자수했다. 그는 1980년대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對共)분실에서 근무하며 피의자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한 혐의로 지명수배가 된 상태였다. ‘공산주의자를 상대한다’는 의미의 대공은 그 시절 ‘남파 간첩을 잡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공산주의에 물든 이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때였다. 이씨에게 걸린 공안사범들은 ‘전기 고문’, ‘물 고문’, ‘관절 꺾기’ 등을 당하고 인간으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을 호소했다. 그가 자수 형식으로 검찰에 체포된 직후 언론은 “다양한 고문 기술로 악명을 날렸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김근태(1947∼2011)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근안씨에게 고문을 당한 피해자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12월 그가 검찰에 의해 지명수배를 당한 것도 김 전 장관과 관련이 있다. 1980년대 민주화청년연합(민청련) 의장으로서 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한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에 붙잡혀 조사를 받는 동안 이씨한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징역 7년 확정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한 이씨는 2006년 11월 출소 후 김 전 장관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의 부인 인재근 전 의원이 “남편은 생전 그를 용서한 적이 없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사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유엔 총회는 1984년 고문 방지 협약을 채택했다. 그 뒤 3년 가까이 지난 1987년 6월 발효한 이 협약은 정보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 등으로 사람에게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김영삼(YS)정부 시절인 1995년에야 유엔 고문 방지 협약에 가입했다. 세계 여러 국가들 중 87번쨰라고 하니 크게 자랑할 일은 못 된다.
다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인권 분야에서 한국이 우등생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며 환영했다. 그런데 2002년 10월 검찰에 체포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던 조직폭력배가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지휘 책임을 지고 나란히 사표를 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겠다.
이제는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잊힌 고문이란 단어가 오랜만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의해 소환됐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국가정보원 요원을 보내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 심문에 국정원 요원이 참여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이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고문 기술을 전수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이 대표가 한국이 유엔 고문 방지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이란 점을 알고서 한 말인지 모르겠다. 이를 떠나 대한민국 안보가 백척간두 위기에 처했는데 원내 다수당이자 제1야당의 대표가 무슨 농담도 아니고 ‘고문 기술 전수’ 운운한 것 자체가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국인 모두가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이 대표 혼자서만 40년 전인 1980년대 경찰서 뒷골목을 배회하는 듯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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