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눈치 보지 않고 자기 감정에 충실
사랑 통해 성장하는 20대 재희役 열연
연기 안 되면 극심한 압박감 느꼈지만
매달릴수록 오히려 세세한 표현 놓쳐
“편안할 때 고유한 매력 나오는 것 같아”
1일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20대 남녀가 사랑을 통해 겪는 성장통을 다룬다. 한 명은 헤프다는 편견과 낙인에 시달리는 여성 재희, 한 명은 정체를 들킬까 두려운 성소수자 남성 흥수다. 대학에서 만나 친구로 13년간 동거하게 된 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쉬운’ 여성과 성소수자 남성의 연애 일대기는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영화에 신선함을 더하는 요소는 매력적인 인물들. 배우 김고은은 남 눈치 보지 않고 삶을 향해 돌진하는 재희라는 역할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1000만 영화 ‘파묘’에 이어 다시 스크린으로 인사하는 김고은을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에서 다루는 재희와 흥수의 13년간의 성장담이 우리네 삶 같다”며 “저 역시 20대 때 느꼈던 불안, 불안정한 감정들, 시행착오를 굉장히 잘 담아냈다”고 소개했다.
김고은이 연기한 재희는 열정적으로 춤추고 술 마시고 사랑한다. ‘겁 없이 부딪치고 산산이 부서지는, 세상에서 제일 속없는 기지배’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자기 감정에 충실하다. 세상은 이 솔직·당당함을 오해하며 손가락질한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려던 재희가 자신을 찾는 여정을 다룬다. 재희의 성장담은 많은 이가 겪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김고은은 “(재희처럼) 20대엔 자기 생각, 신념이 확고하고 세상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오는 서러움이 있다”며 “저도 그때 ‘왜 내 생각의 다름을 틀리다고 하는 거지’ 하고 많이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 시기를 지나 점점 유연해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어른이 되면서 내 다름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김고은은 맡는 배역마다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두는 매력이 있다. 비결을 묻자 코를 찡긋하며 어린아이처럼 쑥스러워했다. 그가 한참 만에 떠올린 비결은 ‘편안함에서 오는 나다움’이다. ‘나는 누구일까’를 찾는 여정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이기도 하다.
“스스로 제가 연기하는 것을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저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줘요. 제가 하는 연기가 너무 귀하고 진지하고 심각하고 이런 상태에서 현장에 있으면 힘이 많이 들어갈 거고 오버하게 되고 더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을 수 있어요. 촬영 현장에서도 사람을 만날 때도 편안할 때 가장 제 고유의 매력이 나오는 거 같아요.”
그는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의 직업으로, 좀 가볍게 생각하려 한다”고 했다. 처음부터 몸에 힘을 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전에는 “현장에서 안 돼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고, 그런 순간이면 코 박고 죽고 싶고” 하며 압박감을 느꼈다. 매달릴수록 오히려 세세한 표현을 놓쳤다. 작품 끝날 때마다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런 시간이 쌓이고 몇 년 지나자 성장한 자신이 느껴졌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작비로 치면 중간 규모 영화다. 김고은은 “넉넉하지 않은 예산 안에서 두 달 반 만에 촬영을 해내야 해서 그 기간이 주는 압박감이 컸다”며 “저희 현장이 굉장히 열악했는데 모두가 씩씩하게 해나갔다”고 전했다. 그는 “이 정도 사이즈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사람 사는 소소한 이야기, 다양한 인간군의 이야기가 담기려면 중간 사이즈의 영화가 많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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