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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J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한 린든 B 존슨(1908∼1973)은 1963년 11월부터 1969년 1월까지 미국 제36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부터 아주 극적이었다. 상원의원이던 1960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 나선 존슨은 치열한 접전 끝에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존 F 케네디(1917∼1963)에게 분패했다. 케네디는 남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텍사스주(州)가 고향인 존슨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한다. 경선 때 생긴 앙금 탓에 웬만하면 거절할 법도 한데 존슨은 선뜻 이를 받아들여 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63년 11월 케네디가 텍사스주 덜레스에서 암살범이 쏜 총에 숨지며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케네디가 생을 마감하는 현장에는 존슨도 있었다.

린든 B 존슨 전 미국 대통령(1963∼1969년 재임). 게티이미지 제공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다. 2022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은 무려 70년의 재위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 13명과 회동했다. 여왕이 유일하게 만나지 못한 미국 대통령이 바로 존슨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전임자가 암살되는 비극을 겪었고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존슨이 외국 방문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다. 그래도 존슨은 임기 도중인 1966년 국빈으로 방한하는 등 한국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존슨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그 시절 한·미 관계는 무척 좋았는데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베트남전쟁에 한국이 대규모 전투 병력을 보낸 것과 무관치 않다. 존슨의 한국 방문 역시 아시아의 월남전 침전국들 순방 일정의 일환으로 성사됐다.

 

존슨의 임기 내내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6·25전쟁 기간 미군 전사자가 약 3만7000명인 반면 월남전에선 미군 장병 5만800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미 행정부가 아무리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미국인이 보기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이었다. 미국 전역을 휩쓴 반전시위는 유럽 주요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 들불처럼 번졌다. 1964년 대선 당시 61%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존슨이 4년 뒤인 1968년 재선 도전을 포기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나토 창설 75주년 기념 정상회의 축하 만찬 도중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건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15일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존슨 기념 도서관을 찾는다. 존슨 행정부 시절인 1964년 제정된 민권법(Civil Rights Act) 60주년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하필 여당인 민주당 몇몇 의원이 바이든의 대선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뒤라 눈길을 끈다. 연방 하원에서 15선을 기록한 민주당 중진 로이드 도겟 의원은 바이든을 겨냥해 “재선 도전 포기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렸던 존슨처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81세 고령인 바이든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와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여당 일각의 후보 교체론에 바이든은 ‘끝까지 완주할 것’이란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렇더라도 존슨 기념 도서관을 방문하는 바이든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할 것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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