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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 소주 언제 땄어요?”…잔술 판매 허용 한 달, 현장선 ‘글쎄’

입력 : 2024-07-09 07:05:56 수정 : 2024-09-04 1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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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서 소주 등 모든 주류 ‘잔술’ 판매 허용 한 달 지났지만 실효성 의문
업주들 “일손 부족, 한 잔씩 서빙, 현실적으로 어려워”
소비자 “위생 관리 철저하다는 믿음 쌓여야”
“잔술이요? 그건 한 잔에 얼마 받아야 할까요?”

 

지난 5월 29일부터 식당에서 모든 주류의 잔술 판매가 허용했지만, 실제로 잔술 판매를 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박윤희 기자 

식당에서 모든 주종의 ‘잔술’ 판매가 허용된 지 한 달여가 지난 5일 저녁. 인천 부평역 인근에서 닭볶음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는 잔술을 판매하고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되물었다. 퇴근 후 직장인들이 몰리는 시간대라 그런지 닭갈비에 소주를 곁들이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잔술을 찾는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5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시행하면서 같은 달 28일부터 외식시장 내 잔술 판매가 가능해졌다. 그동안 위스키나 칵테일, 막걸리를 잔술로 판매하는 곳은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근거 법령이 명확해졌다. 개정안은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누어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주류 판매업 면허 취소의 예외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업계는 개정안 시행 전부터 정부의 잔술 판매 허용 정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과음을 꺼리고 좋아하는 술을 ‘적게, 자주’ 소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잔 술을 원하는 고객이 적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병을 시켜 남길 바엔 ‘한 잔씩’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 이점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잔술을 파는 문화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960~1970년대만 해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잔술 문화는 경제 호황기 서양식 술집이 들어서면서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현재 잔술 판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업주들은 잔술을 얼마에 판매할지, 위생과 보관 등 손님과의 ‘신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친구들과 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는 정모(34)씨는 “잔술을 파는 곳은 아직 못 봤다. 혼자 점심 먹을 때 ‘반주’로 잔 술을 이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업주는 잔술 판매를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잔술 판매가 허용됐다고 해도 찾는 손님도 아직 없을뿐더러 판매하더라도 얼마를 받아야 할지가 고민”이라며 “인건비를 생각하면 1000원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손님 입장에서는 몇 잔만 시켜도 한 병 가격이 나오는데 시켜 드실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업장에서 소주 한 잔당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 10년 전만 해도 버스정류소 근처 매점에서 개비 담배를 파는 것이 흔했다. 개비 담배는 20개비들이 한 갑이 아닌 한 개비씩 낱개로 파는 담배를 말한다. 담뱃세가 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된 2015년을 기준으로 당시 보통 개비당 300~350원에 팔렸다. 

 

개비 담배 판매는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한 갑에 4500원인 담배를 개비당 300원에 판매할 경우 1500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챙길 수 있어 판매점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불황에 담뱃값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과 업주 간 암암리에 거래됐다. 

 

소주의 경우 한 병당 7~8잔이 나온다. 한 잔에 1000원에 판매할 경우 병 소주(5000원)를 팔았을 때보다 2000~3000원의 이득을 더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인건비’를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잔술 판매로 하루 10만원의 이득을 챙긴다고 해도 잔술을 서빙하고 계산하려면 그만큼의 인력이 필요해진다. 

 

서울 종로에서 10년 넘게 잔술을 판매해오고 있는 ‘부자촌’ 사장 전영길(77) 씨는 “한 잔 1000원 잔술이 사라지는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다. 많이 파는 날 하루 10만 원, 평일은 5만 원 정도를 파는데 인건비가 그보다 비싸니 유지를 못 하는 것”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그만하고 싶지만 잔술을 맛보러 찾아주는 이들이 하루에 수십 명이다. 그분들 때문에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입장에서 걱정되는 건 ‘품질관리’다. 소주는 뚜껑을 자주 여닫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횟수가 늘면서 주류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맛이 변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위생 관리다. 잔 술 판매용 소주를 따로 관리할 것인지, 개봉 후 언제까지 판매할 것인지 등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닭볶음탕에 소주를 기울이고 있던 손님 정모(34)씨는 “잔술을 파는 곳은 아직 못 봤다. 혼자 점심 먹을 때 ‘반주’로 잔 술을 이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위스키처럼 병을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새 소주를 따서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좀 찜찜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업주 입장에서는 잔술 판매가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며 “손님이 술 한 병을 주문하면 직원이 그걸 체크해야 한다. 잔술을 판매하면 일일이 따라주고 체크해야 하는데, 그 경우 잔술 판매로 얻는 이득보다 인건비 지출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주 반 병을 따를 정도의 잔 술을 만들어 가격을 정해두고 판매하면 모를까 관리가 까다로운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모든 식당에서 잔술 판매가 합법화 된 가운데, 업주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윤희 기자 

이 교수는  “손님 입장에서는 ‘남은 술을 모아 판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손님과 업주 간 신뢰가 쌓여야 할 것”이라며 “잔술 판매가 허용됐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잔 술 판매가 일반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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