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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 하나로 세상을 말한다는
美 기업의 광고 급히 사라진 건
예술… 자연… 사랑이 빚어낸 감동
모든 공명의 가치 무시했기 때문

대형 유압프레스가 피아노도 먹고, 기타도 먹고, 카메라도 먹고, 페인트통도 먹었다. 아날로그의 상징들이 대형 유압프레스에 들어가 산산조각이 나고,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아이패드다. 최근 미국에서 논쟁이 되었다는 아이패드 광고다. 모든 것이 ‘나’로 통한다는 오만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짓밟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독재자 같다. 망설임의 시간도 없이 그 메시지를 따라 이제부터는 아이패드의 시대라고 그것을 신줏단지 모시듯 할 것인가. 자기 얼굴만 빛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힘을 가졌을 때 그 무지는 얼마나 무서운가.

그 광고는 이상하게 ‘내 손 안의 세계’라는 잡스를 떠올리게 했다. ‘내 손 안의 세계’가 ‘나’까지 밀어내고 ‘스스로 있는 자’를 자처하는 형국이니 광고를 만든 이들은 ‘진화’라고 자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광고는 잡스의 아류 혹은 흉내 내기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오롯이 직관을 따라갈 것을 권하는 잡스의 ‘직관’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과하고 광고를 내렸단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삼성 광고는 거기서 시작하는 모양새다. 부서진 잔해 속을 걸어가는 한 여인, 그 여인이 잔해 속에서 기타를 건져낸다. 여인은 갤럭시탭에 저장된 악보를 보며 자연스레 자기만의 연주를 이어간다. ‘우리는 결코 창의성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란 문장이 뜬다. 삼성과 애플의 광고, 누가 봐도 전쟁이다. 하긴 그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들여 이미지를 만들고 이미지 각인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니 어찌 생사를 건 투쟁이 아닐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광고전투에서의 승자는 삼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4차산업 시대, 인공지능(AI) 시대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치를 유압프레스에 넣고 쓰레기를 만드는 무시무시한 시대라고들 한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자본을 축적할 수 없는 아날로그 도구들에서 빨리 눈을 돌려, AI를 섬기고 따르며 익히라는 메시지가 왜 협박처럼 들리는지.

얼마 전에 친구가 스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을 다녀왔다며 인구 8만밖에 되지 않는 도시의 문화 역량에 대해 놀란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우연히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도 들었다며 그 감동을 전한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피아노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피아노가 지치지 않는 사랑이고, 마침내 기도하는 방법을 넘어 지극한 기도 같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만 있다면 세상을 등지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힘이 세상에 초대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AI도 그런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잡아먹고 연주만을 남길 수 있는 시대의 도래, 그 사실이 임윤찬에게 중요할까.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자기 눈으로 살피고 자기 마음으로 느낄 줄 아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 힘이 울림을 만들어내 친구 안의 어떤 것이 공명한 것이다.

자기 안에 어떤 것을 눈뜨게 하는 무엇을 만나면 우리는 바로 이 ‘지금’이 생명으로 가득한 축복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변하여 초원의 빛이 사라지고, 꽃의 영광이 시들고 말더라도 그 잔해 속에서 남들 눈에 망가진 기타를 꺼내 자기만의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힘, 그것이야말로 오래된 영혼의 힘이다. 우리 안에 물건을 생명으로 바꿀 줄 아는 생명의 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촉으로 미래에 대한 실체 없는 두려움을 정복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운 것은 피아노로서, 가타리스트로서, 화가로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가,라기보다는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어떤 것에 몰입하고 공명하게 되었을 때의 설렘 혹은 뿌듯함이다.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식당,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누리며 공허하게 사는 것보다 깊이 공명할 수 있는 것을 만나 유연하게 사는 삶이 단단하다는 것을 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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