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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선 40년 위스키의 향(香)이 난다 [박희준의 인물화(話)③.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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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31 10:00:00 수정 : 2024-05-31 14:07:15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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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주류업계 첫발 이후 승승장구
윈저·임페리얼·골든블루 등 대성공
손해보는 삶으로 주변에 사람 몰려
개교 50주년 동문 고교에서 대부격
끊임없는 도전과 존중·자율 늘 강조
글로벌 종합 주류회사로 도약이 꿈

위스키는 오래될수록 풍미가 더해진다. 오크통에서 숙성되면서 맛과 향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12년, 17년, 21년 그렇게 기다린다. 지난 40여년 위스키와 살아서일까. 그에게서는 품격과 경륜이 느껴진다. 40년 위스키가 지닌 매력과 같은 그것이다. 김일주(66)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 얘기다.

 

윈저, 임페리얼, 골든블루, 그린자켓. 조금이라도 양주의 세계를 접했다면 귀에 익은 이름이다.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스키 브랜드 발렌타인, 글렌피딕도 그가 다뤘다. ‘미다스의 손’, ‘위스키 대부’로 불릴 만하다.

 

좋은 향기의 술이 사람을 부르듯, 좋은 향기를 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 정치인, 기업가, 공무원에서 동문들, 술집 사람들까지도. 한번 맺은 인연이 오래간다. 2019년 설립한 지금 회사 직원 대부분이 김 회장과 15년 이상 같이 일한 이들이다. 김 회장과 함께 일하고 싶어 직장까지 바꾼 것이다. 무명시절부터 30년 이상 알고 지낸 탤런트 윤다훈씨가 부회장을 맡아 홍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모교인 광주 인성고 동문 사이에서 그를 모르는 후배들이 거의 없다. 그는 이 학교 1회 졸업생이다. 후배들을 챙겨 서로 알고 지내도록 주선하고 개인 사정까지 세세하게 챙겨주는 ‘대부’로 소문나 있다. 6월1일 ‘개교 50주년 기념 가족한마당’ 행사를 위해 거액을 쾌척하기도 했다. 1회 대선배가 열정을 쏟으니 동문회가 활성화하지 않을 수 없다.

 

김 회장 스스로가 평생 손해 보는듯한 삶을 살았다. 40년 전 영업사원 시절부터 월급을 받으면 공부하는 친구와 후배들을 챙겼다. 부도 직전에 몰린 주류 도매상들은 분할 상환 아이디어를 내 도왔다. 도매상 빚보증을 서주기까지 했다.

‘위스키 대부”로 불리는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이 한국 최초로 샴페인 면허를 획득해 출시한 샴페인 골든블랑의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드링크인터내셔널 제공

13년 전 위스키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을 때 일이다. 주요 거래업체인 한 유흥업소에 들렀는데, 로비에서 여성 접대원이 휴대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 여성은 짧은 치마를 입어서인지 바로 줍지를 못했다. 무의식중에 그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서는 양복에 쓱쓱 닦은 뒤 건넸다. 격의 없는 그의 행동은 금세 업계에서 소문이 퍼졌다. 덩달아 회사 제품 매출까지 늘었다.

 

김 회장은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게 더 크게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먼저 손해 보고 희생하다 보면 더 멋지고 더 신의 있는 사람이 되고 영향력까지 따라온다는 생각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위스키 산업 역사의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 백화양조 영업사원으로 주류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위스키 브랜드 ‘베리나인 골드’로 유명한 회사다. 1985년 두산그룹 OB씨그램(두산씨그램)에 흡수합병됐다. 1986년까지 영업 최일선에서 술의 세계를 누볐다. 이 4년의 생활이 평생 농사의 값진 밑거름이었다. 도매상들과 함께 성장하는 전략으로 함께 성장했다. 술집과 거래처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친분을 쌓았다.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이 론칭해 대성공을 거둔 로컬 위스키 임페리얼의 역사를 보여주는 타임라인. 드링크인터내셔널 홈페이지

1987년 마케팅 담당으로 업무가 바뀌면서 새 길을 걷게 된다. 영어와 마케팅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마케팅 담당 임원이 외국인이었다. 영어를 하지 않으면 마케팅은 고사하고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했다. “영업 쪽으로 다시 보내달라고도 해봤다. 모멸감에 회사를 그만두고도 싶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마케팅 관련 서적을 200권가량 읽었다. 아침 7시에 나와 1시간 반 동안 영어 듣기 연습을 했다. 사람이 좋아 새벽까지 술 마시는 일이 많았지만 5년간 빠짐없이 했다. 5년을 들으니 들리기 시작했다. 7년이 지나선 듣고 쓰고 말하는 공포가 사라졌다고 한다. 1989년 두산씨그램 초대 브랜드 매니저는 노력이 가져다준 작은 결실이었다.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위스키 마케팅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996년 두산씨그램에서 론칭한 윈저는 우리 입맛에 맞춘 기획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술집에서 윈저는 위스키의 대명사였다.

 

2000년 진로발렌타인스 마케팅 담당 이사로 옮겨 이듬해 출시한 임페리얼이 다시 그 뒤를 이었다. 위조방지장치 ‘키퍼캡’을 처음으로 적용해 대박이 났다. 한국 위스키 역사상 유일하게 100만 상자를 판매해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진로발렌타인스가 두산씨그램에 밀리던 위스키 시장 판도를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타인 17년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론칭시키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자사 제품 라인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자세를 취한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 드링크인터내셔널 제공

끝이 아니다. 2007년 2월 수석무역 사장으로 옮겨 또 한번 미다스의 기적을 일궈낸다. 세계 최대 주류업체인 영국 디아지오의 한국판권을 따냈다. 그리고 2009년 말 출시한 ‘골든블루’. 파란색 병 디자인도 파격이었으나 알코올 도수를 국내 최초로 36.5도로 확 낮췄다. 위스키는 40도 이상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깬 발상의 전환이었다. 순한 술을 찾는 소비성향 변화를 위스키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소주=25도’라는 상식은 이미 2006년 깨진 터였다. 그가 굳이 체온을 연상케 하는 알코올 도수를 선택한 건 사람의 향기를 담으려는 뜻이지 않았을까.

 

2013년 3월 글렌피딕, 발베니 등으로 유명한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이사로 옮겼다. 이번에는 초록색을 들고 나왔다. 초록색 디자인의 로컬 위스키 그린자켓을 선보여 출시 한달만에 10만병 초도물량을 소진시켜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위스키업계에 몸을 담은 지 36년만인 2019년 3월, 그는 평생 꿈이던 자신의 주류회사를 세웠다. 드링크인터내셔널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로부터 자신이 대성공시킨 임페리얼 브랜드의 독점 판매권을 넘겨받았다.

 

2020년 뉴트로 위스키 패스포트를 내놓고 자사 브랜드 샴페인 골든블랑을 출시했다. 한국인 최초로 샴페인 면허를 획득한 것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뜻하는데, 골든블랑은 국내에서 브랜드와 패키지 디자인까지 개발한 샴페인이다. 골든블랑 5스타를 비롯해 4스타인 크레망, 3스타인 프렌치 스프클링이 라인업을 구성해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일본, 필리핀, 홍콩 등에서도 인기다.

 

그는 성공의 비결로 “끊임없는 도전”을 강조한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새로운 제품을 내놓은 것도 항상 도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실피한 제품도 제법 있었으나 실패에서 더 많은 걸 배웠고 나중에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존중과 자율을 강조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할 것을 주문한다. 드링크인터내셔널 제공

그의 회사 경영 방침은 존중과 자율이 핵심이다. 그의 회사에서 직원들은 자유 분방하게 일하고 토론한다. 대부분 자율에 맡긴다. 직원 스스로가 깨닫지 않으면 좋은 아이디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표나 회장이 방향을 정하는 일이 잦다보면 직원들 자율성은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다. 나중에는 대표나 회장의 의중을 예측하게 되고 자기 생각을 내놓지 않는다. 자율적, 자생적 문화가 사라지면 죽은 조직일 뿐이다. 위에서 지시를 해야 운영되는 그런.

 

그렇다고 무제한의 자율은 아니다. 늘 강조하는 기본사항이 있다. 고객은 추리닝을 입을 수 있지만, 영업사원은 반드시 칼라 있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직원들끼리 자유롭게 놀면서도 상하관계가 있어야 한다. 정직과 성실은 기본이다. 토론도 주먹질만 안하면 모든 걸 허용하지만 토론을 거쳐 결정이 된 다음에는 누구든 따라야 한다.

 

주류회사다보니 술을 마시더라도 순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술이 악기능을 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다든지, 음주운전을 한다든지 한 경우 원스트라크아웃이다.

 

김 회장의 꿈은 회사를 세계적인 종합 주류회사로 발돋움시키는 것이다. 해외 유명 주류를 국내로 들여오는 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 브랜드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누비겠다는 목표다. 그는 K팝, K푸드, K무비처럼 K주류도 못이룰 꿈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위스키= 위스키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몰트(malt)를 원료로 써 제조하는 증류주다. 두줄보리만으로 싹을 틔운 맥아(麥芽)가 바로 몰트다.  단식 증류소에서 100% 몰트만으로 만든 위스키가 싱글몰트다. 귀리나 밀, 옥수수, 호밀 등 다른 곡물로 만든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다. 증류한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킨다. 세월이 지날수록 풍미가 깊어지는 법. 대신에 1년에 2%가량의 원액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야 한다. 천사의 몫이라는 뜻에서 ‘에인절스 셰어(angel’s share)’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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