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꼭 1년 전인 1938년 9월 나치 독일은 체코에 영토 일부의 할양을 요구했다.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사는 주데텐란트 땅을 내놓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했다. 영국·프랑스는 체코 방어를 포기했다. 영국 총리 체임벌린의 주도 아래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4대 강국 정상이 독일 뮌헨에 모여 회의를 열고 협정을 맺었다. 당사국임에도 체코 대표는 회의에 참석조차 못했다. 뮌헨협정에 따라 체코는 눈물을 머금고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겼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 주권을 희생시킨 역사상 최악의 사례라 하겠다.

런던에 돌아온 체임벌린은 영국 국민들을 향해 뮌헨협정 내용이 담긴 문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독일로부터 명예로운 평화를 가지고 귀국했다”고 외쳤다. 대중은 열광했다. 체임벌린은 ‘전쟁을 막은 영웅’으로 부상했다. 과연 그럴까. 이듬해인 1939년 3월 체코는 남은 영토마저 나치 독일에 병합되며 지도에서 사라졌다. 체임벌린은 극심한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뮌헨에서 “주데텐란트 말고 다른 영토적 야심은 없다”고 했던 히틀러의 다짐이 거짓말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탓이다. 나치 독일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한 영국은 부랴부랴 군비 증강에 나섰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체임벌린과 같은 보수당 소속이지만 당내 비주류였던 처칠은 뮌헨회의에서 영국의 위신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강하게 비판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발발한 뒤 영국 하원은 체임벌린을 총리직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처칠을 앉혔다. 그릇된 유화정책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전후 수십년이 흐른 1990년 9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가 프라하를 방문했다. 체코 의회 연단에 선 대처는 연설 도중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1938년 당시 히틀러를 달래는 유화정책을 쓰는 바람에 당신 나라의 독립을 잃게 만드는 우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처칠은 재빨리 뮌헨협정을 반박했습니다.” 뒤늦은 반성문이 아닐 수 었다.

그 뮌헨협정이 21세기 한반도 안보를 논하는 현장에 갑자기 소환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남북 정상회담 내용에 관해 소개하며 ‘비핵화에 대한 북한 김정은의 약속은 진심이었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은)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뮌헨협정을 예로 들었다. 김 장관은 “뮌헨회담이란 유화정책의 결과로 다음해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며 “북한의 의도를 전적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부정적인 안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 처칠과 체임벌린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떠올리면 답은 명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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