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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연극 ‘두 메데아’ 취소가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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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3 23:30:01 수정 : 2024-04-03 2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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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생태계 건강성 위해 갈등 대신 머리 맞대야

올 초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학로 공공극장 쿼드에서 예정된 연극 ‘두 메데아’ 공연이 개막을 코앞에 두고 전격 취소됐다. 연극계 거물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오랜 기간 추악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2018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 당시 연희단거리패 대표였던 배우 김모씨가 출연한 게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의 무대 복귀에 비판적인 연극인과 관객들이 ‘두 메데아’를 제작한 극단과 공연장을 내준 서울문화재단 측에 강하게 항의하며 연극 보이콧(거부) 운동에 나선 영향이 컸다. 2018년 구속기소된 이윤택은 과거 여성 단원 등 9명을 25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이듬해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벌인 사람들은 이윤택의 상습 성범죄를 묵인·방조한 핵심 당사자로 김씨를 지목하며, 그가 진정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무책임하게 예술활동을 이어간다고 성토했다.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김씨도 가만있지 않았다. “저 때문에 공연이 열흘 전에 취소되는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게 됐다”며 “저는 성폭력 조력자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글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앞서 경찰도 이윤택 수사 당시 김씨의 성폭력 방조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로 결론낸 바 있다. 그는 다만 “선배로서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시간들에 대해 마음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이처럼 첨예한 입장 차이와 갈등 속에 터진 ‘두 메데아’ 공연 취소 사태가 연극계 안팎에 미친 파장은 가볍지 않았다. 법적 책임이 없다면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다시 활동해도 되는가, 특정인을 겨냥해 여러 사람이 공들여 준비한 공연 자체를 취소하도록 압박하는 건 온당한가, 관객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는가, 도의적 책임의 범위와 진정한 사과의 수위는 어디까지인가 등 여러 생각할 거리와 숙제를 남겼다.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계기로 지난달 16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대학로X(엑스)포럼’ 주최의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토론회가 주목된 이유다. 연극계 현안에 대한 연극인들의 자발적인 토론문화를 위해 만들어진 대학로X포럼이 마련한 자리에 보이콧 운동 주도자들은 물론 ‘두 메데아’ 연출자와 배우, 연희단거리패 관계자, 김씨 측 인사 등이 참석했다. 조금이라도 서로의 이견이 좁혀지거나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되는 토론회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김씨의 복귀 논란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며 가시 돋친 설전이 오고갔다.

 

그래도 성폭력 예방 교육 강화 등 미투운동 이후 보완된 제도들이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거나 피해자 보호·지원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 등 관계 당국과 연극계가 새겨들어야 할 목소리는 의미가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이런 공론장이 꾸준히 이어져 건설적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연극계는 물론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문화예술계 전체에 해당되는 얘기다. 누구든 고의나 실수로 지탄받을 만한 짓을 할 수 있다. 예술가라고, 예술적 성취나 기량이 뛰어나다고 쉬쉬하거나 어물쩍 넘어가선 곤란한 시대다. 과오 인정과 진솔한 사과를 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면 재기할 기회도 줘야 하지 않을까. 완벽하게 합의하긴 어렵더라도 서로 갈라져 손가락질을 하기보다 모여서 머리를 맞대는 게 문화예술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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