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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세월호 10년, 그들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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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1 23:34:28 수정 : 2024-04-01 23: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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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을 꿈꾸던 한 고등학생이 죽었다. 10년 전 4월 어느 날,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떠나다가 새까만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디자이너를 꿈꾸던 학생도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해 가수를 꿈꾸던 아이도 돌아오지 못했다. 검도를 잘하던 학생도, 시 쓰기를 좋아하던 아이도 죽었다.

10년 전 그날, 학생들이 죽은 건 어른들의 책임이다. 배가 기우뚱했을 때 세월호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만 하지 않았더라면, 돈에 눈이 멀어 화물을 무리하게 선내에 적재하지 않았더라면, ‘전원 구조’라는 정부의 오보가 아니었다면, 해경의 구조 능력이 완벽했더라면 아이들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김범수 산업부 기자

누군가 “위기 상황에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0년 전 그날 추악한 어른들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기자들은 고작 원고지 4매의 기사를 위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한 점 헤아리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도려냈다. 비록 조심하려고 노력했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도려냈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의 꿈을 앗아 간 참사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외면해 온 정치인들,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어른들. 정치인뿐만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추모하고 싶었던 마음인데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서 비난과 냉소를 보내던 수많은 이들. 지켜 주지도 못하고 남 탓하기 바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10년 전 그날 자정이 넘은 시간. 진도 팽목항에 밀려오던 새까만 파도를 바라보며 통곡을 하던 한 학생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지켜 주지도 못했고, 차가운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했다. 하다못해 그 어머니에게 따뜻한 손길조차 내밀지도 못했다.

지금도 악몽을 꾼다. 꿈에서 나는 10년 전 그날 세월호 안에 있다. 배가 기우뚱하자 나는 선내 방송실로 달려간다. 이 배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거라 알고 있기에, 모두 갑판으로 대피하라고 알린다. 어느새 출동한 해경으로부터 모두가 구조된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베갯잇은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눈물로 젖어 있다. 그 꿈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에 악몽이다.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졌던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사회 초년 때 진도 팽목항을 찾던 스물여덟 살이 됐을 것이다. 그들도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방송인을 꿈꾸던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어쩌면 기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와 비교도 되지 않는 훌륭한 기자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곧 나다.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어른으로서 그들의 꿈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이다. 기자로서 사회에 나왔을 때 누군가는 영광이라고도 했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없다. 그저 그날 죽어 간 아이들에 대한 속죄로 글 기둥 하나 붙잡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에 다시 휘말리지 않도록 한 명의 어른으로서 오늘도 아무도 모를 참회의 글을 쓴다.


김범수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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