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들을 위한 대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복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29일 의대 교수들의 주 52시간 준법투쟁이 가시화하고 있다.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실제 준법투쟁에 들어갈 경우 환자들의 불편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 피로에 지친 교수들…병동 축소 이어 근무시간 줄이기
아주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교수들에게 법정 근로 시간인 주 52시간에 맞춰 근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앞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각 대학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지난 25일부터 교수들의 근무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다.
비대위는 최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40대 안과 의사가 사망한 것이 과로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교수들에게도 외래 진료 등을 현실화할 것을 권하고 있다.
실제 아주대 병원 한 진료과의 경우 전공의 5∼6명이 맡았던 야간 당직 업무를 현재는 교수 3명이 돌아가며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피로가 누적되자 근무 시간 조정 등에 나섰다.
비대위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협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교수들은 힘들지만, 환자 곁을 지키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증 및 응급환자 곁에서 주야로 외래, 병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에 오가며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제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할 경우 환자의 건강과 안전도 지킬 수 없기에 불가피하게 진료를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대병원 일부 교수는 그동안 주 100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체력적 한계가 찾아오자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에 맞추기 위해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은 한 달에 열 번씩 당직을 서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고, 교수들도 체력적, 정신적 한계가 오면 외래 진료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배장환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원장은 "필수과 교수들의 경우 잦은 당직 근무로 쓰러질 판"이라며 "중증 환자들을 위주로 진료하며 주 52시간제 근무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남대 비대위 관계자는 "오늘 오후 병원장과 만나 주 52시간 혹은 주 40시간 근무 등 진료시간 축소 방안과 함께 외래 예약 축소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북대병원은 지난 25일부터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외래 진료를 축소한 것에 이어 일반병동 일부의 운영을 줄이고 가동하지 않게 된 병동의 간호사들을 다른 병동에 근무하게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명대 동산병원도 다음 달부터 일부 병동의 운영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사태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2개 정도의 일반 병동을 다른 병동과 합치고, 간호사 등 인력을 응급실 등 분야에서 근무하게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교수들 사직서 제출도 계속…환자 불편 가중 우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상국립대 의대는 교수들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인 사직 교수의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의대 관계자는 "우선 오늘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계속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이를 당장 수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 의료활동은 계속되는 만큼 교수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8일 오후까지 비대위에 사직서를 전달한 교수는 총정원 283명 중 132명이다.
비대위는 이날 오후까지 사직서를 받을 계획이며 사직서 제출 교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이 겪는 불편도 심해지고 있다.
후두질환을 앓고 있는 40대 A씨는 최근 경상국립대병원으로부터 전공의가 없어 수술이 당장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병원에 수술 날짜를 잡으러 가니 6개월 후에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6일을 6개월로 잘못 말한 건가 싶어 다시 확인까지 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처럼 수술이 급한 환자들은 어쩌란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영남대병원 접수대에는 '병원 내 사정으로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도 이날 오전부터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병원에서 유방암 2기 치료 중인 A씨(51)는 "3월 초에 2차 병원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고, 서울 쪽 병원을 알아봤는데 병원이 없었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빨리 치료받고 싶은 마음에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 병원에 있다가 수술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미뤄지는 경우도 있더라"며 "5월에 수술인데 수술받을 때까지 의사 사직 사태가 더 악화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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