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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투자자 보호 ‘증권 집단소송제’ 사실상 사문화 [심층기획-20년 제자리 ‘K디스카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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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20 06:00:00 수정 : 2024-02-20 07: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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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불법행위로 투자자 피해 발생 때
한 명만 승소해도 모두 보상받는 제도
소송 절차 까다롭고 불법 입증 어려워
美선 ‘증거개시’ 통해 신속한 대응 도와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내에도 2005년 증권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실상 사문화됐다. 소송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기업의 불법행위 입증이 어려워 실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장벽이 높은 탓이다. 증권 집단소송의 법적 요건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는 한편 증거개시제도(Discovery) 도입을 통해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빗발치는 이유다. 이에 맞서 재계는 소송 남발을 유발하는 조항을 정비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해왔다.

19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2-3부(재판장 박형준)는 최근 투자자 1245명이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을 상대로 낸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투자자들이 2014년 법원에 집단소송 허가를 신청한 지 10여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앞서 동양그룹이 2013년 부도 위험을 숨기고 회사채를 팔아 대규모 투자 손실을 낸 바 있다. 당시 피해자는 4만여명, 피해액은 무려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 피해자는 2014년 6월 집단소송 허가를 신청했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허가받았고 2021년 10월에야 첫 재판이 시작됐다.

증권 집단소송 제도는 기업의 증권 관련 불법행위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을 때 한 사람만 승소해도 같은 피해를 본 투자자 모두 보상받는 제도다. 일반 소송과 달리 법원 심사를 통해 소송 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이 이의 제기인 ‘즉시항고’를 하면 절차가 중단된다. 이 탓에 본 소송이 아닌 허가 신청 과정에서만 3심을 거치고, 본 소송까지 하면 최종 6심을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동양그룹 사건처럼 집단소송 개시에만 6년이 걸리는 사례도 있다. 허위 공시와 분식 회계 등으로 사유도 제한되어 있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뒤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은 불과 11건뿐인 게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이와 달리 미국의 사법제도는 증권 집단소송과 관련해 증거개시 제도를 통해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유도한다. 이 제도는 정식 재판이 진행되기 전에 양측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동시에 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할 만한 사건은 주로 기업이 증거를 갖고 있어서 피해자들의 증거 수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증거개시 제도에 따라 사측은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 만큼 기업이 의심스러운 경영행위를 했을 때 원고인 주주는 이와 관련된 모든 증거자료를 법정에 공개하라고 요청할 수 있다. 기업이 이에 불응하는 것만으로도 패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증권가에서 ‘미국 주주들이 법원으로 갈 때 한국 주주들은 포털 사이트 게시판으로 가 하소연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도는 배경이기도 하다.

재계는 집단소송 요건이 완화되면 피해자 구제보다는 소송대리인(변호사)만 이익을 보는 기획소송이 몰리면서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미국 상장 기업은 주가 하락에 따른 투자 손해를 보전하라는 주주들의 무분별한 집단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공개(IPO) 직후 1년 내 주가 하락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기업이 최근 3년간 80개가 넘었는데, 절반 이상이 기각됐다는 후문이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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