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민정수석 추천으로 박영수 특검 임명, “(박영수가) 화천대유와 엮여 뒤에서 그런 부패를 저지른 인사였을 줄 꿈에도 몰라”
박영수, 박근혜정부에서 좌천당한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으로 임명해 본격 수사 착수
박 전 대통령, “김기춘·조윤선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특검의) 다음 타깃은 나’라고 생각”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 당시 전혀 사실이 아닌 부분을 사실인 것처럼 확정적으로 발언할 때 어이가 없어”
“특검팀이 대면 조사 일시와 장소 유출하고, 당초 합의와 달리 녹음·녹취 무리하게 요구해 대면조사 무산된 것”
“(윤 대통령과) 좋은 인연으로 시작된 관계는 아니었지만,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국민 통합 메시지에 공감”
“그분(사저 찾아온 윤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과거 일에 대해 ‘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하다’고 말해”


2013년 박근혜정부에 이어 2017년 문재인정부, 2022년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세 명 대통령의 인연은 이처럼 얄궂었다. 특히,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로 찍혀 한직을 전전하던 윤석열 검사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데는 이른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으로 재기의 발판을 닦은 것과 무관치 않다. 당시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의 성공 여부는 박근혜-최순실-삼성 간 연결고리 입증에 달려 있었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그중 삼성 수사를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해 성공한 수사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 특검 수사를 떠올린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2월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최근 펴낸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1·2’(중앙북스)를 통해서다.

회고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특검은 이 부회장을 뇌물 공여자로 보고 구속했고, 동시에 내가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며 “‘이제 다음 타깃은 나일 테고, 나를 구속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겠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나는 결백했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내가 의결권이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지시하고, 그 대가로 최(서원) 원장과 함께 433억원(기소 때는 592억원으로 증가) 뇌물을 받았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었다”며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합병과 관련해 공단이나 참모진에게 어떤 지시도 한 적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 관여한 적이 없다.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특검이 나를 뇌물과 연결짓는 데 혈안이었다”고 한 박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와 언론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특검발 기사들이 쏟아졌고, 특검에서도 수사 진행 상황이나 의혹 등을 홍보하듯이 공개했다. 특검이 한마디 할 때마다 나라가 들썩댔고, 국민이 흥분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의혹 사건 특검 후보였던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과 조승식 전 대검 형사부장 중 박영수를 선택한 건 최재경 민정수석의 추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내 처지가 다른 누군가와 더 논의할 상황도 아니어서 그대로 결정했다. 당시엔 박 전 고검장이 화천대유와 엮여 뒤에서 그런 부패를 저지른 인사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당시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탄핵심판 결정문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전혀 사실이 아닌 부분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확정적으로 발언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며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 ‘최서원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는 대목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최 원장은 나를 속였다. 그의 위법행위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내게 큰 책임이 있으며, 지금도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최 원장에게 어떤 이익을 줄 목적으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는 헌재의 결정문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헌재가 “피청구인(박근혜)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목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억울함을 내비쳤다.
앞서 특검 조사를 적극 받으려 했고, 유영하 변호사가 윤석열 수사팀장과 일정을 조율해 ‘청와대 비서동(위민2관)에서 특검보 2명과 부장검사 2명, 검사 1명이 참여해 ‘참고인 조사’로 진행하며, 조사 내용은 녹음·녹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측은 조사 전까지 비공개로 하되, 당일 오후 10시 이후에는 조사 중인 사실이 공개되더라도 청와대가 양해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내용을 보고 받은 박 전 대통령은 특검조사팀 휴게실을 마련하고, 담배 피우는 검사를 배려해 흡연 공간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이어 2월 7일 유 변호사를 통해 윤석열 팀장에게 ‘2월9일에 조사를 받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7일 저녁 8시 전 유 변호사가 “조금 전 윤석열 팀장이 전화로 ‘SBS 8시 뉴스에 2월9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다는 내용이 보도된다고 해서 지금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나중에 보도를 보고 난 뒤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에게 정확한 경위 파악을 지시했고, 윤석열 팀장은 확인 결과 특검팀에서 조사 날짜가 유출된 것은 아니라고 알려 왔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그러나 유 변호사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SBS관계자에게 보도 경위를 확인해 보니 그 인사는 ‘특검(팀)에서 조사 사실을 확인해주었고, 취재원은 일반 수사관이 아닌 검사 이상의 고위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특검팀이 조사 일시를 유출한 건 신뢰를 깬 것인 만큼 조사 날짜를 다시 조율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 후 윤석열 팀장 대신 협상 당사자로 박충근 특검보를 내세운 특검팀이 당초 약속과 달리 조사 내용 녹음·녹화 필요성을 요구하면서 대면조사가 무산됐다는 게 박 전 대통령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 돌이켜봐도 왜 특검에서 갑자기 녹음·녹취를 하겠다고 고집했는지 의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조사는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내게는 (의무사항도 아닌 녹음·녹취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며 “주변에서는 내가 특검 조사를 거부한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특검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고 특검의 의도를 의심했다.

2021년 연말 성탄절 특사로 4년 9개월여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저 방문 요청을 받는다. 그는 “윤 당선인은 내가 탄핵되는 과정에서 특검팀의 수사팀장이었고,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는 (구치소에서 통증에 너무 시달리던 나의) 형집행정지를 불허하기도 했다. 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좋은 인연으로 시작된 관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분이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국민 통합의 메시지에는 공감하고 있었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선) 투표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4월12일 대구 달성 사저를 찾아온 윤 당선인을 만난 박 전 대통령은 “그분은 지난 과거 일에 대해 ‘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하다’고 했다”며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에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고마웠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야기로 시작해 2022년 3월 대구 달성 사저로 내려오기까지의 약 10년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유일하게 헌정사에 탄핵으로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재임 시절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회고록 집필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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