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무죄·집유 등 판단 상이
“범죄로 인식… 처벌법 시급해”
지난해 7월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터지면서 범람했던 살인 예고 글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 발생 이후 ‘정치인 살인 예고’ 양상으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치인 살인 예고는 온라인상에서 동조하는 여론이 생기기 쉬워 실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처벌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 대표의 흉기 습격 다음 날인 지난 3일 이후 현재까지 총 6건의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 예고·협박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가운데 4건의 피의자를 검거했고 2건은 추적 중이다. 대상은 이 대표가 4건으로 가장 많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1건, 민주당사 1건이다.

경찰은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 대상을 상대로 흉악 범죄를 예고하거나 협박하는 글을 올리는 등의 행위로 인해 국민적 불안감이 확산하지 않도록 엄정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도 지난해 8월부터 12월 살인예비·위계공무집행방해·협박 등 혐의로 송치된 다중위협사범 189명 중 32명을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협박범들에 대한 엄정 처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에 온라인 공간에 범죄를 예고한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수사 기관은 협박죄, 살인예비죄, 위계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적용하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사람을 상대로 생명·신체에 관한 위협이 있으면 협박 혐의로 기소한다. 또한 실제 살인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이 있고 흉기를 준비하는 등 물리적 실행 행위를 했다면 살인예비 혐의를, 게시글로 인해 경찰 인력 등이 동원됐다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긴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모호하다 보니 판결은 갈리고 있다. 창원지법은 지난 19일 강남역에서 엽총을 이용해 시민들을 해할 것이라고 암시한 글을 올린 30대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7일 대림역이 목적지로 설정된 내비게이션 화면과 차량 내부 흉기 사진을 게시하며 흉기 난동을 암시한 30대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검찰은 협박 혐의를 적용했으나 각 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살인예고 글을 올린 혐의에 대해 수사기관과 법원의 온도 차가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한 온라인 사이트에 부평 로데오 거리에서 여성만 10명을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작성한 40대에게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 시기 용산역에서 흉기난동을 예고하는 온라인 방송을 진행한 20대에는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공중협박죄 처벌 규정이 없어 장난인지, 실제 가해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증거 유무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살인 예고 글이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적 불안감을 증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온라인 살인 예고 글은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되고 실행에 옮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살인 예고 글 작성이 범죄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벌 규정을 만들어 사람들이 스스로 조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대검은 경미한 수준의 살인 예고 범죄가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지난해 8월 법무부에 공중협박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을 건의한 바 있다. 사람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위협하거나 이러한 위해를 가할 것을 가장해 공중을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