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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국정원이 간첩 수사 못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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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1 22:43:16 수정 : 2024-01-01 2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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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대공수사 경찰이 전담
해외첩보망 없고 전문인력 부족
수사역량 떨어져 안보공백 우려
22대 국회, 수사권 복원시켜야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세계 최고 정보·공작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동지역 적대국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대대적 기습공격 낌새도 파악하지 못해 충격을 줬다. 이집트 정보기관이 ‘큰일이 날 것’이란 정보를 줬지만 과소평가한 것이다. 정보 실패가 얼마나 참혹한 피해를 낳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 국가정보원 대공 파트 분위기가 침울하다. 어제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돼 간첩 잡는 게 핵심업무인 대공 요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2020년 12월 권력기관 개혁을 명분으로 국정원법 개정을 강행해 올해부터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서다. 국가안보에 구멍에 뚫렸지만 여소야대 국면이라 해법 찾기가 만만치 않다. 정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 “북한 대남공작이 활개를 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모사드의 실패가 어른거린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경찰의 대공수사 역량은 국정원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대공수사의 핵심인 해외 정보수집과 수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2000년 이후 북한의 지령 전달은 대부분 중국·동남아시아 등 해외에 있는 공작원을 거친다. 그래서 대공수사는 특성상 5∼10년, 또는 그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지난해 기소된 창원·제주 간첩단 사건도 국정원이 10년 전부터 추적해온 것이다.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내사만 3년 이상 걸렸다. 경찰은 해외 대공 정보망이 없어 한계가 뚜렷하다.

경찰의 준비도 미흡하다. 경찰은 대공수사관을 지난해 6월 기준 462명에서 올해 7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경찰 내 비(非)수사인력을 재배치하는 수준이다. 대공수사를 담당할 경찰 간부의 절반은 이 분야 경험이 3년이 채 안 된다. 지난해 경찰 자체 평가에서도 대공수사 관련 과제들에 대해 ‘미흡’ 또는 ‘다소 미흡’으로 평가한 걸 봐도 그렇다. 이런 수준이라 고도의 훈련을 받고 날로 진화하는 간첩들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원법 개정 후 3년 유예기간 동안 양 기관이 보완했어야 하지만 업무 이관도 제대로 안 됐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자 국정원은 내심 유예기간 연장을 기대하며 소극적이었고, 경찰은 대공수사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통상 안보·간첩 관련 정보는 기관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공유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정원이 수십년간 쌓아 올린 국내외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망)를 경찰과 공유하는 건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정부는 국정원법 시행이 임박하자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부랴부랴 ‘안보 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 규정’을 만들었다. 국정원이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추적할 수 있고, 행정 및 사법 절차를 지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이 제한적으로 대공수사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미봉책이라 양 기관이 힘겨루기를 할 소지가 있다. 이런 ‘땜질 처방’으로 국가안보를 다루는 현실이 불안하다.

간첩 수사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년 대공수사 경험과 해외첩보망을 보유한 국정원에 해외정보만 수집해 경찰에 넘기라는 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다. 대공 전문가들에게 경찰의 업무 보조만 하라면 의욕이 생기겠나. 수사권이 없으면 감청영장 받는 것도 어려워 해외 요원들의 대공 정보수집·채증 활동이 위축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국력 손실이자 안보 자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라다. 국내에는 아직도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종북 주사파들이 암약하고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대남 적화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정원의 대공 수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한다. 안보 공백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낳는다. 22대 국회는 국정원이 간첩을 잡을 수 있도록 대공수사권을 돌려줘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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