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아들 집을 찾아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아파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 양반, 니미시벌 아파트로 가 줘요”라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호반리젠시빌’ 아파트로 데려다줬다. 해마다 한글날을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우스개다.
호반리젠시빌은 외계어 같은 요즘 아파트 이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전국에서 이름이 가장 긴 아파트는 전남 나주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1(2)차’로 25자다. ‘울산블루마시티서희스타힐스블루원아파트’, ‘동탄시범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 등 20자 안팎인 곳도 여럿이다. 1990년대까지 평균 4.2자이던 아파트 이름은 2019년 9.8자로 갑절 이상 길어졌다.
과거엔 아파트 브랜드가 지금처럼 길고 복잡하지는 않았다. 압구정현대, 잠실주공5단지, 잠원한신처럼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합해서 짓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건설사들이 래미안, e편한세상 등 아파트 상표를 만들면서 아파트 단지 이름에도 브랜드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써밋’, ‘퍼스트’ 같은 하위 브랜드까지 등장해 단지 이름이 더 길고 복잡해졌다.
이런 추세는 아파트 이름을 길고 복잡하게 지어야 있어 보이고 집값이 올라간다는 인식이 커진 탓이다. 그래서 입주민들이 다양한 의미를 조합하기 쉬운 외국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강변에 짓는 아파트엔 ‘리버’, 숲이 있으면 ‘파크’나 ‘포레’, 학군이 좋거나 학원이 많으면 ‘에듀’를 넣는 식이다. 기존 단지들이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가 내일 공공·민간 건설사들과 함께 ‘아름답고 부르기 쉬운 공동주택 명칭 제정을 위한 선언식’을 연다. 이 자리에서 아파트 이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최종 수립한 뒤 내년 초 각 구청과 주택조합, 시공사 등에 배포할 방침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길고 생소한 외국어 사용은 자제하고 부르기 쉬운 한글이나 지역의 유래, 옛 지명 활용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취지는 좋지만 아파트가 투기 대상이라는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강제성 없는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으로 아파트 이름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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