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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내용 직접 정리 ‘탐독가’
규장각 세워 주요도서 보관·연구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만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가까이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대표적 성군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는 책을 늘 곁에 두고 독서를 생활화했던 대표적인 왕이다. 정조가 신하들과 나눈 어록을 모아 1814년에 편찬한 ‘일득록(日得錄)’에는 정조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를 보여 주는 내용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정조는 “책을 읽는 사람은 날마다 읽을 과정을 정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하루 동안 읽는 양이 많지는 않더라도 공부가 누적이 되어 의미가 푹 배어들면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고는 곧바로 중단한 채 잊어 버리는 사람과는, 그 효과가 몇 배의 차이가 날 것이다”라고 하여 독서를 할 때는 무엇보다 읽을 과정을 정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과정을 정해 놓았다. 병이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과정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았다. 왕이 된 후로도 일찍이 폐기한 적이 없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잠시나마 쉬지 않고, 반드시 촛불을 켜고 책을 가져다 몇 장을 읽어서 일과를 채워야만 잠자리가 편안해진다”는 기록에서는 독서가 삶의 즐거움이 되었던 정조의 모습을 접할 수가 있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다양한 서적을 읽었음은 “내가 춘저(春邸: 세자궁)에 있을 때 평소 책에 빠져 북경에서 고가(故家) 장서(藏書)를 구입하여 왔다는 소식이 있으면 문득 가져와 보라고 하여 다시 사서 보았다. … 경사자집(經史子集)을 갖추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 책들은 내가 다 보았다”는 기록에서도 볼 수가 있다. 왕이 된 후에도 독서에 대한 정조의 열의는 끊기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성색(聲色)을 좋아하지 않아서, 정무를 돌보는 여가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직 독서뿐이다”라고 하여 ‘독서왕’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정조는 1776년 즉위 직후 창덕궁 후원에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을 설립해 주요 도서들을 보관하고 연구하였다. 이덕무, 박제가 등으로 하여금 도서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맡긴 것도 책에 대한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국가 정책이 제대로 정립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처음 벼슬길에 오른 신진(新進)들에게 갑자기 “그대들은 요즘 무슨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로 비록 여가가 적겠지만 하루 한 편의 글이라도 규칙적으로 읽게 되면 칠서(七書)를 두루 읽을 수 있다”면서 공직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할 것을 권유하였다.

 

정조는 독서를 한 후에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파악하였다. 정조는 “직접 내용을 정리한 것이 수십 권에 이르는데, 그 과정에서 효과를 얻은 게 많으니 범연히 읽어 가는 것과는 같지가 않다”고 하면서 독서한 내용을 정리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소개하기도 했다.

 

독서에 대한 정조의 예찬은 “책을 한번 읽는 것이 차를 마시는 것보다 나은데도,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맛을 잘 모른다”거나 “책은 베개를 베는 것보다 나으며 토론을 하는 것이 잡담을 하는 것보다 낫다. 하루 이틀 좋은 시간을 허송한다면 어찌 너무 아깝지 않은가”라고 하여 독서와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눈 내리는 밤에 글을 읽거나 맑은 새벽에 책을 펼칠 때 조금이라도 나태한 생각이 일어나면 문득 달빛 아래서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이는 선비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뜨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거나 “더위를 물리치는 데 책 읽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책을 읽을 때는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아 마음에 중심을 잡게 되어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표현을 통해서는 추위나 더위를 막론하고 독서가 정조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독서에 대한 정조의 열정을 떠올리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가을에 책 한 권을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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