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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유대인 학살 당시 교황은 왜 침묵했나

입력 : 2023-11-01 19:14:20 수정 : 2023-11-01 1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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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12세 재위기간 문서 바탕
바티칸 주최 국제회의서 제기
“反유대 델라쿠아 신부 영향력”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침묵에 대한 미스터리에 해답을 제시하는 의견들이 최근 바티칸이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제기됐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오 12세는 1939년부터 1958년까지 재임한 교황으로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에 침묵했으며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하마스 전쟁 발발 이틀 만인 지난달 9일 비오 12세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수십명 학자들이 바티칸 후원으로 로마에 모여 최근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된 관련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지난 9월 교황청은 문서고에서 1940년대 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오 12세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의에서 학자들은 이 기록이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대한 보고를 묵살한 당시 교황청 고문인 안젤로 델라쿠아 신부의 영향력 있는 역할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훗날 로마 교구를 관장하는 추기경에 오르는 델라쿠아 신부는 1943년 “유대인의 영향력을 경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라고 발언하는 등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여왔다. 미국 종교학자 데이비드 커처는 “델라쿠아는 교황청에서 유대인 관련 문제를 전담해 와 그의 의견이 교황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문서 발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티칸 문서학자 지오바니 코코는 비오 12세의 침묵에는 독일이 점령한 유럽지역 국가들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런 판단에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는 교황의 믿음이 기반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회의 주최자 중 한 명인 에티엔 베토 주교는 “비오 12세가 내린 결정의 기본 전제는 ‘아돌프 히틀러가 승리할 텐데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고 밝혔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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