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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짓던 땅, 공공을 위한 정원으로… 시민들 휴식처 되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입력 : 2023-10-27 06:00:00 수정 : 2023-11-06 1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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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땅의 과거와 일상 담은 공원’ 서울식물원

공원 성격 수변레저 시설서 보타닉 변경
언덕과 수계 만들고 식물 위한 조경 꾸며
열린숲·호수원·습지원 등 4개 영역 구성
주제원의 마곡문화원, 유일한 과거 흔적

주민이나 직장인들 한가로운 산책 즐겨
일상 쌓이며 개개인 추억의 공간되기도

우리는 공원이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친환경적으로 만들며 공공성을 높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공원은 개발사업을 할 때 반대의견이 일지 않는 거의 유일한 도시기반시설이다. 때로는 이를 이용해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여론 무마용으로 공원을 조성하기도 한다. 공원이 생기면 주변 지가가 상승한다는 지금까지의 경험도 공원 조성을 모두가 반기는 이유다.

여의도공원, 상암 월드컵공원, 서울숲, 북서울꿈의숲, 서울식물원까지 역대 서울시장들은 임기 내 역점 사업 중 하나로 대규모 공원을 만들었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서울식물원이다(면적 50만4000㎡). 서울식물원의 초기 개발 방향은 오세훈 시장의 전 임기 때 추진됐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변레저 복합시설을 설치하는 ‘마곡 워터프런트 사업’이었다.

과거 논이 있었던 서울식물원 부지는 이제 8000여종의 식물이 자라는 서식지이다. 열린숲, 호수원, 주제원, 습지원으로 구성된 서울식물원은 한강과 마곡산업단지를 연결하고 있다.

2007년 12월, 서울시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폭넓은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설계안을 수립하기 위해 ‘마곡 워터프런트 국제현상공모’를 공고했다. 이듬해 6월, 19개국 105개 팀이 작품을 제출했고 그중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제출한 ‘살아있는 물과 물의 순환(Heart of Magok is Nature of Living Water)’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삼우설계는 사람의 심장이 한 번 박동할 때마다 0.07ℓ씩, 하루에 총 7000ℓ의 깨끗한 피를 몸에 공급하듯이 새로운 공원에서 정화된 물이 하루에 500만ℓ씩 한강에 유입된다는 개념으로 계획안을 전개했다.

하지만 실시설계를 거치면서 재해 위험성, 수질 및 유지관리 곤란, 경제적 타당성 논란이 제기됐고 결국 그해 12월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과업이 중단됐다(출처: 마곡개발백서Ⅰ, 서울특별시, 2019). 3년 후 호수 중심의 수변공원으로 변경하는 계획이 발표됐지만 이번에는 오 시장이 중도 사퇴하는 변수가 일어났다.

공원의 개념이 지금과 같은 ‘보타닉(botanic; 식물의, 식물학의)’으로 정해진 근거는 서울연구원에서 진행한 ‘마곡도시개발사업 실행전략수립 연구용역(2012.6.)’이었다. 서울연구원이 제시한 조성 방향은 녹색도시모델의 위상 확립, 첨단농업으로 고부가가치화, 교류와 융합의 장(場) 조성이었다. 이후 ‘서울화목원(Seoul Botanic Park) 기본계획(안)’이 발표됐고 2015년 11월14일에 착공돼 2019년 5월1일에 정식 개원했다.

서울식물원이 과거 논농사를 지었던 경작지였음을 상기시켜주는 마곡문화관과 주변 조경.

공원의 성격이 ‘수변레저 복합시설’에서 ‘보타닉’으로 바뀌면서 조경설계를 맡은 서안조경의 역할이 커졌다. 서안조경은 서울식물원 부지가 벼농사를 짓는 경작지였다는 과거 역사에 주목했다. 논농사를 짓는 땅은 벼의 생장 조건을 균일하게 하고 경작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평평해야 유리하다. 반면 여러 가지 식물이 살기 위해서는 언덕과 같은 지형과 수계를 갖춘 다양한 서식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안조경은 평평한 부지를 높이가 다른 지형으로 만들고 한강으로부터 물을 끌어와 수계를 조성했다.

현재 서울식물원은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하철역과 가까운 남쪽의 ‘열린숲’은 도시성이 가장 강한 영역이다. 열린숲은 가운데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LG아트센터, 숲문화원, 방문자센터가 주변에 배치돼 있다. LG사이언스파크와 같은 연구 및 업무시설과 가깝기 때문에 날이 좋으면 주변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도시락을 들고 잔디에 앉아 한가로운 점심시간을 보내기도 하다.

열린숲 북쪽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서쪽은 호수 주변으로 산책길과 나무 데크가 설치된 ‘호수원’이다. 지금은 대다수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걷거나 풍경을 감상하는 정적인 행동을 하지만 인접한 지원시설용지에 상업시설 개발이 완료되면 다른 성격의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호수 주변을 걷다 보면 가끔 이 구역 최고의 스타 왜가리나 백로를 만나기도 한다.

다양한 식물들의 서식 환경이 되어주는 서울식물원의 호수.

호수원 동쪽은 야외 주제정원과 온실로 구성된 ‘주제원’이다. 야외 주제정원에는 한국 자생식물이 자라고 온실에는 지중해와 열대기후의 식물이 12개 도시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일반적으로 온실은 돔의 형태로 지어진다. 온실 내부에 기둥이 없는 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돔 형태로 온실을 지으면 키 큰 나무들을 천장고가 높은 가운데에 군집해서 키워야 한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식물원의 온실은 오목한 그릇 형태로 지어졌다. 그래서 온실의 가장자리를 따라 높은 나무들을 분산해서 키울 수 있다. 더불어 가운데로 빗물을 모아 조경용수로 활용하기도 한다. 온실은 삼우설계와 더시스템랩이 함께 설계했다.

주제원에는 서울식물원이 과거 논농사를 지었던 경작지였음을 상기시켜주는 마곡문화관이 있다. 과거 양천수리조합 내 배수펌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었으니 미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새것만 있는 마곡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으로서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양촌로 넘어 한강에 면한 북쪽은 ‘습지원’이다. 서남물재생센터와 궁산 사이에 있는 습지원은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성이 강한 영역이다.

고하정 조경학박사는 ‘도시공원을 탐(探)하다’에서 공원이 다른 도시기반시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집어내고 있다. 그가 공원 이용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생태, 환경, 지속가능성, 공공성과 같은 학습된 대외적인 가치를 공원의 중요한 가치로 언급하다 질문이 오갈수록 추억의 장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만큼 공원은 다른 어떤 도시기반시설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쌓이는 일상에 가까운 공간이다.

회사 근처에 있는 서울식물원은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나의 휴식처로 일상에서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원이다. 더군다나 마곡 워터프런트 국제현상공모에서 삼우설계의 계획안이 당선됐을 때 난 계획안을 수립했던 도시설계팀에 소속돼 있었다. 이후 서울식물원 프로젝트는 도시설계팀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다. 9명이었던 팀원은 당선 이후 두 배로 늘었지만 서울식물원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팀은 해체됐고 나도 그곳을 떠났다.

프로젝트를 했던 팀원 중 여전히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어떤 대학교수, 누군가는 다른 설계사무소 도시설계본부장, 누군가는 조경학박사, 누군가는 국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누군가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서울식물원을 산책하며, 시설물의 디자인, 보행로의 선형, 언덕과 수공간의 형태를 볼 때마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서울식물원은 ‘공공을 위한 정원(公園)’임에도 내게는 지극히 ‘사밀(私密)’한 장소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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