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향하는 의사들 많아질 것”
의협 “늘어난 의사들 다시 서울 몰려
‘피·안·성’ 향한다면 결국 실패한 정책”
전문가 “단순 증원만으론 효과 없어
필수의료 쿼터 배정 정부 개입 필요”
민주 ‘호남권 의대 설치’ 지난 대선 공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정원 확대 조건 제시
與는 “野에 주도권 넘어갈라” 신중 모드
한덕수 총리 “국민 상당수가 지지할 것”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들을 지방으로, 또 필수의료 분야로 향하게 할까.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게 적용되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늘어나는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줄었던 351명을 다시 정원에 포함하는 방안부터 1000명 이상 파격적인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면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 지원자가 늘어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수도권 등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한 지역을 벗어나 지방으로 향하는 의사들도 늘 것으로 본다.
정부 관계자는 “필수 의료나 지방 의료체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절대적인 의사 수 자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의대 정원 확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올려 이 분야로 인력을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필수의료 기피의 이유 중 하나로 의료분쟁이나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늘어나는 것을 꼽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의사들이 다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이나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향한다면 결국 이는 실패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인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지역 의료 확대를 위해서는 대학 선발 단계에서부터 지역 출신의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도 지역인재전형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인재전형은 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자가 지원할 수 있는 대입 전형이다. 의대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옮긴 뒤 의대 졸업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2028학년도부터는 ‘비수도권 중학교 및 해당 지역 고등학교 전 교육과정 이수·졸업자’로 자격 요건이 강화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현재 지역 의과대학들이 시행하고 있는 지역인재전형을 대폭 확대하면 지방에 남을 확률이 적게라도, 단 5%라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교수(보건행정학) 역시 “평생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대학 졸업 후에도 터전을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의사가 적은 지역의 대학에서 더 많은 정원을 가져갈 수 있는) 지역 할당제 등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필수의료분야 기피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필수의료과목 전공의 수련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과목별 전공의 이탈률 자료에 따르면 흉부외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목의 전공의 이탈률은 5년 만에 크게 늘었다. 흉부외과 전공의가 중도에 전공을 포기하는 이탈률은 2018년 6.3%에서 지난해 24.1%로 크게 늘었다. 산부인과의 경우도 같은 기간 5.8%에서 18.5%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소아청소년과는 5.6%에서 6.7%로 소폭 늘었다. 반면 인기과인 피부과의 경우 1.2%에서 지난해는 0%로, 성형외과는 4.5%에서 2.8%로 줄어들어 대조된 모습이다.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 쿼터 배정에 일정 부분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교수는 “의사들은 기·승·전·수가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수입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필수의료 분야로 가진 않는다”면서 “현재 각 학회에서 전문의 숫자를 조정하고 이를 정부에서도 존중하고 있는데, 결국은 정부에서 필수의료 인력에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할 수 있도록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野 “공공·지역의대 설립 등 법안 논의하자” vs 與 “야당 의견 경청… 당정 협의 추가 필요”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숫자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공공·지역 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의대 정원 확대 조건으로 내밀었다. 숫자만 늘어난다면 특정 진료과목 선호 현상과 수도권 집중만 심화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지역에 의대가 없는 전남권에 의대를 설치하자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 요구를 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정부가 꺼내 든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자칫 야당으로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견제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칙적으로 찬성”이라면서도 “필수·공공·지역 의료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공의대·지역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위한 법안 논의를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논의 방향은 밝히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호남권에 의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는 민주당의 지난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민주당 의원들의 의대 설치법안은 김원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목포대 설치안과 김회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순천대 안, 전남 동·서부 권역에 각각 의대 캠퍼스를 유치하자는 소병철 의원 안이 있다. 민주당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3.7명이고, 우리나라 평균은 2.5명인데 전남은 1.7명에 불과한 부족한 지역 의료 기반을 유치 이유로 들고 있다.
민주당은 조속히 논의를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전날 전남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성명서를 낸 데 이어 이날은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지역구 국회의원인 소 의원이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전남권 의대 설치를 촉구하는 삭발식을 했다. 그는 “왜 전남만 의료 서비스에서 제외가 돼야 하느냐”며 “30년 숙원, 전남의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설치를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말했다. 목포를 지역구로 둔 김원이 의원도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증원될 의사 정원 몫에 전남권 의대, 목포의대 신설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전남의 열악한 의료현실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삭발 투쟁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신중한 입장이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에 대해 “그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데, 야당의 이야기니까 진지하게 경청해보겠다”고 밝혔다.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그 부분에 대해 논의된 게 없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유 정책위의장은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선 “큰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편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백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국민의 상당수는 의료 쪽에는 조금 인력이 늘어나야 되겠다라는 생각에 지지를 많이 하실 것 같다”며 “이해당사자들과 대화를 해가면서 충분히 국민적인 공감대를 확실하게 얻으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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