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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의 악몽과 한국 핵무장론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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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3 16:01:50 수정 : 2023-09-25 08: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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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천재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천재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 

 

“원자 폭탄이 무기고의 신무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의 이름을 저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최근 크리스터포 놀란 감독이 영화로 다뤘던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10월16일, 원자 폭탄 산실이었던 로스앨러머스의 총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한 말이다. 그에 대한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의 공산주의 성향, 스파이 논란에 많은 부분이 할애됐지만 그가 원자 폭탄 프로젝트에 성공한 뒤 어떻게든 핵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쓴 이력 또한 상세하게 기록돼있다. 전쟁 승리를 명분으로 핵 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에게도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 폭탄의 위력은 너무 참혹했던 탓이다.

 

최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다시 한번 ‘오펜하이머의 악몽’이 부각됐다. 원자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가 우려한 대로 전 세계적인 ‘핵 레이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다. 이 악몽을 부추긴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판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자 우크라이나를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핵 레이스’의 또 다른 주역이 북한이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새 핵무기 경주가 달아오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약 3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핵자강에 보혁 공감대...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관건’(9월16일자, 김예진 기자) 기사는 달라진 자체 핵무장론 기류를 전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022년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사진. 조선중앙통신

◆독자 핵무장론 스펙트럼이 넓어진 이유

 

북한 핵 수준이 갈수록 고도화하면서 보수 정치권 중심으로 우리도 자체 핵무장 논의를 본격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한·미 원자력협정 파기에 따른 국제 제재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론에 막혀 공허한 외침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핵자강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진영을 불문하고 넓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한국핵자강전략포럼’이다.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 포럼에는 보수 성향 인사가 3분의2, 진보 성향 인사가 3분의 1 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을 정리한 책 ‘왜 우리는 핵 보유국이 되어야하는가’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국도 자체 핵무장을 해 남북간 핵균형을 이루고 감축 협상을 통해 제도적인 핵 관리체제로 이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 정치인은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그는 지난 2월에도 페이스북에 “우리의 살 길은 불확실한 확장억제 전략이나 불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남북 핵균형 정책”이라고 썼다. 세계 3대 핵 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핵을 반납했다가 안보보증 당사자였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사례를 들어 홍 시장은 “북은 핵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북핵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우리 국민의 71%가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 2021년 12월)가 있을 정도로 여론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NPT 탈퇴에 따른 국제 제재와 일본의 핵무장 등 ‘핵 도미노’ 촉발에 따른 국제 안보 위기 극대화 등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6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미 원자력협정 내용 어떻길래 

 

그래서 나오는 게 최소한 일본이 미국과 맺은 원자력 협정 수준으로라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공감대는 제법 넓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원자력 협정을 맺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5년 개정을 통해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상용화 등의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공동연구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1988년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얻어 추출한 플루토늄을 쌓아두고 있다. 일본이 현재 보관중인 플루토늄은 약 50t으로 핵탄두 6000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우리는 우라늄 농축의 경우도 20% 미만으로만 한미 간 협의를 거쳐야 할 수 있다.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은 전면 허용, 당사자 합의시 20% 이상 고농축도 가능하게 한 미·일 원자력협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재처리와 고농축을 금지하는 이유로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상시적인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본 수준과 형평성을 맞춰야한다고 미국 정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억제 협력 체제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핵협의그룹’(NCG) 창설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의 핵 공유 체제에는 못 미치지만 사전에 정보를 공유, 협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전 보다 강화된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의회에서 “북핵 방어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자체 핵무기 개발이 효율적”이라면서 “마음만 먹으면 1∼2년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황의 변화,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기술 거래 가능성 등 국제 안보 정세 변화에 따라 독자 핵무장론의 향배는 출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때 핵무장론이 금기시되던 사회 분위기는 사라졌으며, 북한의 위협과 중국·러시아·일본 등 동북아 정세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P.S. 취재한 김예진 기자에 물었습니다.

 

-일부 정치인·전문가 담론에 그쳤던 핵자강론이 저변을 넓히는 배경은. 

 

“하노이 회담 실패에서 보듯이 북한이 더 이상 외교적 협상을 통해 비핵화 논의를 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으로 핵을 포기하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에서 나온 것이 한국도 핵 자강을 통해 남북간 핵균형을 이뤄야한다는 구상이다. 한·미 당국간에 합의한 핵협의그룹 등 확장억제 협의체 활동으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국핵자강전략포럼에는 어떤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나. 

 

“포럼을 이끄는 정성장 대표는 오래전부터 독자 핵무장론을 펼쳐왔다. 보수 성향의 군 안보 전문가 뿐 아니라 문재인정부 시기 대사와 진보 매체 관계자 등도 자주적 관점에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비공개로 참여하는 교수, 군 장성, 핵공학자들도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협정 수준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방미 때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해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가 이뤄지지않을까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 반응 등을 감안하면 이와 관련된 움직임은 현재 없는 것 같다.”

 

<관련기사>

 

‘핵자강’에 보혁 공감대… 韓·美 원자력 협정 개정이 관건 [뉴스 인사이드-자체 핵무장론 2.0]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1518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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