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의 고영표는 2023 KBO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포심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시속 134.3km로 가장 느리다. 규정이닝을 채운 16명의 투수 중 고영표를 제외한 나머지 15명은 모두 포심패스트볼의 평균구속이 시속 140km는 넘긴다.
투수가 공이 빠르면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큼 당연한 사실이다. 고영표는 리그에서 가장 느린 포심패스트볼로도 가장 안정적이고도 위력적인 투수로 군림하고 있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의 위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고영표의 포심패스트볼의 구종 가치도 7.9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체인지업은 무려 28.1이다. 2023 KBO리그를 통틀어 고영표의 체인지업보다 구종가치가 높은 공은 없다.

직구와 체인지업을 앞세운 사이드암 고영표는 19일 수원 삼성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시즌 20번째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소집해제 후 돌아온 첫 시즌인 2021시즌과 지난해에도 퀄리티스타트 21개를 기록했던 고영표는 KBO리그에서 퀄리티스타트를 집계한 이래 최초로 3년 연속 퀄리티스타트 2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20일 LG와의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만난 고영표는 “1개만 더하면 퀄리티스타트 20개를 채우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3년 연속 퀄리티스타트 20개가 최초 기록이라는 것은 몰랐다. 기사를 통해 알았다”면서 “일단 목표로 했던 퀄리티스타트 20개를 달성해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한 시즌 동안 꾸준하게 선발 투수로서 제 역할을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영표가 밝힌 퀄리티스타트의 비결은 투구수다. 그는 “타자 한 명당 투구수가 효율적으로 나와야 6이닝까지 던질 수 있다. 3점 이내로 막으려면 출루를 허용하더라도 적은 공 개수로 공격적으로 던져야 확률을 높일 수 있어서 마운드에서 공격적으로 승부하다 보니 6이닝 이상을 자주 던질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최근 피안타를 좀 많이 맞고 있긴 한데, 그래도 자신감 있게 승부해야 더 안타가 안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승부를 하다보면 범타도 나오고, 삼진도 잡을 수 있다는 마인드로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빠른 공을 던지는 구위형 투수가 아니고,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라 체인지업의 구위와 직구의 커맨드가 받쳐줘야 타자들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 최근 몇 경기에 조금 힘이 떨어져 직구가 몰리기도 하고, 체인지업이 밋밋해졌었다. 그러다보니 쓸데없는 볼이 많아져 투구수도 늘어나고, 피안타도 늘고 그런 악순환이 있었는데, 다시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도중 지나가던 이강철 감독은 고영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으면서도 “퀄리티스타트 20개 말고 20승을 3년 연속으로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고영표는 “감독님은 승리투수 되는 걸 원하시네요. 그런데 감독님도 퀄리티스타트 20개 3년 연속으로 못해보시지 않았나요?”라고 취재진에게 되묻기도 했다.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하면 달성하는 퀄리티스타트의 최소 조건은 6이닝 3자책이다. 이는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4.50이다. 이를 두고 퀄리티스타트가 그리 대단한 기록이 아니라는 회의론자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고영표는 “6이닝 3실점을 꾸준히 했다고 보면 평균자책점 상으로는 좋은 투수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6이닝을 던졌다는 것, 이닝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기록인 것 같다. 5이닝 무실점을 해도 퀄리티스타트로 쳐주지 않는 것을 보면 선발 투수가 6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그 경기에서 제 몫을 다 했고, 팀이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이어 “매번 3실점을 하는 게 아니고, 2실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저희 팀이 승리할 때보면 선발들이 6~7이닝을 던져주고, 손동현-박영현-김재윤으로 이어지면 깔끔하게 끝난다. 그런 경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벤자민이나 쿠에바스, 배제성 등 선발투수들이 6이닝을 던져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영표에게 또 욕심나는 기록이 있을까. 그는 9이닝 당 볼넷을 언급했다. 고영표의 현재 9이닝당 볼넷은 0.94개로 리그 부동의 1위다. 2위 알칸타라(두산)이 1.58개로 2위다. 고영표는 쓸데없는 볼의 남발 없이 경기를 안정적으로 끌어주는 최고의 투수인 셈이다. 그는 “지금 9이닝당 볼넷이 0점대인 것으로 아는데, 그 기록도 욕심이 나요. 그런데 그 욕심을 내면 볼넷이 늘어나고 그렇긴 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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