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傍觀者)’.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떤 일에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마냥 나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순 없지만 그다지 좋은 이미지도 아니다. ‘방관자 효과’가 달갑지 않은 의미인 것처럼 말이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설 것으로 생각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은 채 지켜보기만 하는 현상이 방관자 효과다. 어떤 공동체이건 구성원들 스스로 철저히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그러지 않으면 해당 공동체는 여기저기 상처가 곪다가 터져버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되어 가는 것 같다.
학교만 봐도 그렇다. 가장 교육적인 환경에서 끈끈한 교우·사제 관계 등 유익한 경험과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야 하는 곳인데 과연 그런가. 학교폭력(이하 학폭)과 교권침해에 시달리다 심신이 병들거나 끝내 세상을 등지는 학생과 교사가 수두룩하다. 물론 가해자의 잘못과 이런 현실을 초래한 환경 탓이 크다. 비극적인 사태를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한 구조적 시스템도 문제가 작지 않다. 그렇다고 가해자의 만행과 피해자의 고통을 알았던 주변인들이 수수방관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 이들이 팔짱만 끼고 있는 대신 가해자에게 “그만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면, 피해자에게 “혼자 많이 힘들었지”라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7∼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올랐던 현대무용 ‘그리멘토(GRIMENTO)’는 인상적이었다. 제목은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하는 ‘그리(GRI)’와 라틴어로 기억, 순간을 뜻하는 ‘메멘토(MEMENTO)’의 합성어로 ‘회색의 순간’을 의미한다. 학폭 문제를 다룬 이 작품에선 남녀 무용수 16명이 각각 가해(8명)·피해(1명)·방관(7명) 학생 역할로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표정과 몸짓, 역동적인 움직임만으로 학폭이 얼마나 비열하고 끔찍하게 자행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중 가해자와 피해자 못지않게 관객의 이목을 끄는 건 회색지대에 놓인 방관자들이다. 이들은 뭉칠 경우 가해 집단에 위협적인 존재인데도 폭력 현장을 애써 외면한다. 자신과 무관한 일에 끼고 싶지 않거나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 폭력의 강도가 더 세지고 피해자는 몸을 웅크리며 벌벌 떨다 극한에 내몰린다. 암울한 상황은 각성한 방관자들이 용기를 내 피해자의 편에 서고 가해자들을 말리면서 반전된다. 방관자와 가해자 모두 피해자를 끌어안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을 맞으며 공연이 끝난다.
‘그리멘토’와 관련해 정구호 연출은 “방관자는 가해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학폭은 방관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며 ‘방관자의 영향력’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심각한 교권침해를 당한 끝에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진 교사들도 억울한 처지에다 오롯이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했을 것이다. 가해자는 끊임없이 압박하고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시스템은 부실한 마당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야 할 학교와 동료 교사마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무너지지 않을 교사가 얼마나 될까.
그만큼 방관자의 ‘부정적인’ 영향력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방관자의 탈을 벗어던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어떤 공동체든 소수의 권력자와 강자가 제멋대로 하는 일에 제동을 걸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상황을 고쳐나갈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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