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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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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19 15:00:00 수정 : 2023-10-03 22: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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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투명아동’ 되는 이주여성의 혼외자

‘퍽’.

 

메이(가명·36)씨가 익숙하게 닭을 내려친다. 말복(8월10일)을 10여일 앞두고 있어 평소보다 작업량이 많다. 복날이 다가오면 새벽 6시부터 이렇게 닭을 잡는다. 힘들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다. “종일 닭 잡는 일만 하면 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해도 일할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는 그다.

 

일할 곳은 적고 생활비용은 줄여야 하는 이주민들은 닭이나 오리 육가공 일을 많이 한다. 식품과 관련된 일이라 매일 일이 있고, 기술을 요하지 않는 단순 노동으로 지속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관련 공장들이 있는 충북 음성, 진천, 청주 등지로 이주민과 난민이 몰리는 이유다. 메이씨도 그 중 하나다. 

 

결린 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메이씨는 딸 주은(가명·4)이를 생각한다. 닭 공장에서의 고된 작업을 그렇게 견뎌왔다. 메이씨는 딸을 아픈 데 없이 잘 키우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번다. 

 

지난 7월29일 메이(가명·36)씨가 퇴근 후 집을 향해 가고 있다. 목덜미엔 파스 2장이 붙어 있다. 복날을 앞두고 평소보다 작업량이 많았다고 했다. 청주=윤준호 기자

“진료비가 4만원이라고요?”

 

그날을 떠올리면 메이씨는 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감기로 열이 39도까지 오른 주은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귀를 의심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한국인은 1만원 이내로 약 처방까지 받을 수 있는데, 딸에게는 4배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이후 메이씨는 딸이 아플 때 ‘돈이 없어 병원에 못 데려가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수시로 사로잡힌다. 주은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주은이 아빠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주은이는 아직 출생 등록을 하지 못했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메이씨는 주은이 아빠와 2020년 헤어졌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던 남자는 매일 집에서 주정을 부렸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과 갈라서야겠다고 결심했다.

 

‘태국 여자? 이 중학생 아이는 뭐지?’

 

결별한 이후에야 메이씨는 주은이 아빠가 혼인 신고와 딸 출생 등록을 차일피일 미룬 이유를 알게 됐다. 그의 가족관계등록부 배우자 항목에 웬 태국인 여성이 올라가 있었다. 그에게는 심지어 자녀도 있었다. 이 여성과 결혼했다가 헤어진 주은이 아빠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혼 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2년 가까이 함께 살며 사실혼 관계에서 낳았던 주은이는 졸지에 ‘혼외자’가 됐다.

 

출생 등록 안 된 아이를 키우는 건 배로 힘들었다. 한국인 아이들은 나이가 찰 때마다 무료로 맞는 예방 접종을 주은이는 20만원을 내고 맞아야 했다. B형 간염, HPV, 파상풍 등 접종해야 하는 가지 수도 많았다. 그때마다 메이씨는 15만∼20만원씩 냈다. 대부분 아동이 보육비 전액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받지만 어린이집에도 한 달에 50만원 넘게 낸다.

 

◆까다로운 외국인 출생 등록…최소 4000명이 ‘무등록’

 

세계일보 사건팀이 최근 10년(2013~2022년)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 판결문 250건을 분석한 결과 상급심 중복 건수 등을 제외한 177건의 사례에서 출산 시 이주여성 홀로 남겨진 경우는 10건(5.6%)이었다. 

 

이주여성은 내국인과 달리 엄마 혼자 아이를 출생 등록할 수도, 양육에 대한 공적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이들은 ‘외국인’과 ‘미혼모’라는 이중 약자성에 놓여 있다.

 

메이씨는 지난해 3월 충북이주여성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주은이 출생 등록 절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출생 등록을 하려면 우선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등록 없이 불법으로 체류했다며 주은이 앞으로 나온 범칙금만 80만원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메이씨에게는 큰돈이다. 게다가 유전자 검사 등 출생 등록 준비로 만날 때마다 주은이 아빠는 그에게 30만∼50만원을 요구했다.

 

정승희 충북이주여성상담소 소장에 따르면 미등록 상태의 외국인 자녀는 적지 않은 수준인데, 이 아이들이 그림자로 살아가는 건 “정말 반인권적”이다. 자신의 이름과 인격체로 인정받고 사는 것은 아동들이 건강하게 크는 데에 중요한 문제라서다.

 

주은이처럼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한 외국인 아동은 올해 4월 기준 4168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실에 따르면 2015∼2022년 출생 등록이 안 된 임시신생아번호는 6404개이며, 이 가운데 출생 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아동의 번호가 4168개다. 이조차 최솟값이다. 소병철 의원실 관계자는 “병원에서 출산한 경우만 통계에 잡힌 것인데 미등록 외국인의 상황을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숫자가 더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러한 외국인 아동에 대해 “‘미등록’이 아니라 ‘무등록’ 아동”이라고 강조했다. 등록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출생을 등록할 방법 자체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들 외국인 아동은 생모 국가에조차 등록되지 않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무국적자로 산다.

 

◆‘한국인의 어머니’로만 호명…결혼비자 외 출산은 외면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성의 아내이자 한국인의 아이를 키울 어머니로만 호명되는 제도’를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과 혼인해 출산할 것을 가정한 결혼비자(F-6) 외 이주여성의 출산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F-6 비자 미소지 이주여성이 낳은 혼외자의 경우 우선 생모 국가에 출생 등록을 해야 한다. 캄보디아처럼 생부와 생모 모두 본국 행정기관에 출석해야 출생 등록이 가능한 경우 일이 복잡해진다. 혼인 관계가 아닌 생부가 타국까지 가서 출생 등록을 도와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생모 국가에 출생 등록을 했다면, 한국에서 아이를 외국인으로 등록하고 생부 인지를 거쳐 출생 등록이 가능하다. 이때도 이주여성이 홀로 30만원씩 드는 유전자 검사 비용을 부담해 인지 청구를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생부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출생 신고는 아예 불가능하다.

 

허오 대표는 “아이가 태어난 지 1년6개월이 됐는데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아이의 존재를 증명할 수단이 없어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한국에서 양육을 포기하는 이주여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됐지만 외국인 아동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은 부모의 국적, 체류자격, 비정규 이주 상태 등과 무관하게 국내 출생 모든 아동이 출생 신고가 돼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권고했다”며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고 밝혔다.

 

제19대 국회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이주민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자스민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은 “절차와 아동복지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자스민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은 지난 7월19일 인터뷰에서 “저출생인 나라에서 지금 있는 외국인 아이들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이 위원은 “한 베트남 이주여성이 출생 등록을 위해 고아원에 아기를 맡긴 사례도 있었다”며 “국내 출생 아동에 대해 외국인 등록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법무부는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비자와 외국인번호를 부여해도 될지 형평성 문제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녀 만 18세 이후 ‘비자 연장 불가’…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주은이의 출생 등록만 마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자녀를 출산해 양육하는 외국인 미혼모는 체류가 불안하고 경제 활동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미혼모의 체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비자 제도를 개선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지난해 7월)가 있었지만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다. 법무부는 지난 3월 권고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국민과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외국인에게만 자녀양육(F-6-2) 비자를 부여한다. 혼외자를 키우고 있는 외국인 미혼모를 위한 체류 자격은 사실상 없다. 법무부는 한국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외국인 미혼모에게 방문동거(F-1) 비자를 주는데, 2년마다 관련 비용을 납부하고 체류 자격을 연장해야 한다. 게다가 자녀가 성년이 되면 연장이 불가하다.

 

법무부는 F-1 비자로 체류 중인 외국인 미혼모가 예외적으로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받아 취업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제한이 크다. 취업 가능한 직종인 계절근로는 계속 있는 일이 아니고, 외국어회화강사 등 외국어 교육 분야는 모국어로 하는 7개 국가 국민이 아니면 어렵다.

 

외국인 미혼모는 다문화가족지원제도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은 F-6 비자로 체류하고 있거나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자와 그 자녀만을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승희 소장은 “부모의 체류가 불안정하면 그 불안이 아이에게 전이될 수밖에 없다”며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포괄적으로 고민해 안정적 양육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온정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더 정확히 본다면 이렇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단속해 강제 퇴거시키고, 반대쪽에선 계절노동자를 받는 모순을 정 소장은 지적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인 자녀를 양육한다는 점은 결혼이민자와 똑같은데 혼인 여부로 차별하는 것 아니냐”며 “가족결합권은 성인이 돼서도 부정당할 이유가 없는데 인도주의적 고려가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년을 기점으로 보호종료아동의 지원책이 끊긴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외국인 미혼모 자녀들도 마찬가지”라며 “요즘 누가 고등학교 졸업한다고 독립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앞서 인권위는 “대한민국 국민과 사이에서 출산한 혼외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실질적으로 결혼이민 체류자격자와 같다”며 “‘자신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정상적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하는 F-6비자 조건에 준하는 경우”로 판단해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메이씨는 주은이가 열여덟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는 “태국에서 아이를 키워볼까 생각했지만 딸을 더 안전한 나라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느는 주은이를 보는 메이씨는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도 이별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청주=글·사진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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