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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마당 그네에 앉아 다리를 흔든다

 

다리를 흔들 때마다 그네가 간지럽고 간지러움처럼

구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먼 산에서 시작한 비가 가까운 산으로 온다

천변으로 온다 멀리서 가까이로 비가 다가온다

담 너머까지 도착한다

 

그네 앞까지 오면 얼른 뛰어가야지

손을 머리에 얹고 찰박거리며 도망가야지

 

하지만 비는 담 너머에서부터 더 다가오지 않는다

 

(중략)

 

비와 나는 마주 보고만 있다

이상한 비, 이상한 “대치”다. 멀리서부터 점차 가까이로 다가오던 비는 문득 동작을 멈추고 더는 오지 않는다. 이상한 긴장감. 이상한 외로움. 올 듯 말 듯 머뭇대는 비와 겨루며 혼자 마당 그네에 앉아 다리를 흔드는 “나”. 비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만 있다. 비가 오면 얼른 뛰어가야지, 도망가야지,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힘껏 발을 구르면 저만치 비의 세계에 닿을 것도 같지만, 그네의 간지러움을 애써 참고 있다. 나는 왠지 이 시가 슬픔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차오르는 울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별안간 떠오른다. 명치 끝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남몰래 맞서 견디는 마음이 으레 그러하듯이. 겉으로는 다만 비 구경이나 조금 하다 들어가야지, 하듯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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