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옆집도 같은 나무로 지었는데 왜? 마우이 ‘미라클 하우스’의 비밀 [이슈+]

, 이슈팀

입력 : 2023-08-23 16:00:00 수정 : 2023-08-24 10:35:21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잿더미 속 기적처럼 홀로 남은 ‘빨간지붕 집’
100년된 목조건물 매입해 2년 전 대대적 수리
흰개미 때문에 집 주변 두른 돌에 불길 막혀
집주인 “죄책감 든다…마을 재건 위해 써달라”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한 가운데서 혼자 멀쩡한 모습으로 우뚝 선 빨간지붕 집. 마치 흑백사진에 그 집만 컬러로 합성한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이는 현대 미국사에 ‘최악의 화재’로 기록된 지난 8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화재 현장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 집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미라클 하우스’(기적의 집)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와이 역사재단에 따르면 이 건물은 과거 지역 유명기업 부사장의 사택으로 사적지 지정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1925년 지어졌다가 194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는데, 과거 하와이 전통 건축 양식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집이란 이유에서였다.

지난 8일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를 화마가 휩쓸고 간 뒤 해변 마을의 모습. 잿더미가 된 마을 한 가운데 빨간지붕 집만 유일하게 살아 남아 ‘미라클 하우스’(기적의 집)으로 불리고 있다. 호놀룰루 시빌비트 캡처

하지만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은 너무 낡아 썩어가고 있었고 2021년 현 주인이 이 집을 구입하기까지 몇 년간 비어 있었다. 집주인 트립 밀리킨은 “당시 집 상태가 악몽같았지만 뼈대는 남아 있었다. 그래서 대대적인 보수공사와 개조작업을 했다”면서 “그 때의 작업이 화재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무엇이 빨간지붕 집의 기적을 만들어냈을까?

 

1.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화재 후 처음 사진이 공개됐을 때, 이 집이 이웃집들과 달리 콘크리트 철근 구조로 지어졌다거나 벽돌로 지어졌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밀리킨은 하와이 지역 언론인 ‘호놀룰루 시빌 비트’ 인터뷰에서 “우리집은 100% 나무로 지어졌고 난연처리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집을 짓고 개조하는 데 사용된 목재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였다. 밀리킨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는 탄닌산이 함유돼 있어 화염에 견디는 힘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내화성이 있는 나무로 집을 지어 불에 타지 않은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시빌비트에 따르면 밀리킨의 옆집도 같은 나무로 지어졌지만 이번 화재에 전소되어 뼈대도 남지 않았다.

‘미라클 하우스’의 리모델링 전 모습. 몇 년간 비어있던 오래된 목조 건물을 이곳 주민 트립 밀리킨이 2021년 매입해 대대적으로 수리한 뒤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호놀룰루 시빌비트 캡처

2. 불씨에 강한 강철 지붕?

 

미라클 하우스의 빨간색 지붕은 불을 막는 데 어느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불이 발생하면 나무가 타면서 껍질이 폭발하듯 튀어 나간다. 이때문에 마치 포탄이 쏟아지듯 불 덩어리가 날아다니는데, 불씨가 가연성 물질에 떨어지면 화재로 번진다. 

 

밀리킨은 집을 수리하면서 주택 지붕으로 널리 쓰이는 아스팔트 대신 상업용 강철 지붕을 올렸다. 아스팔트는 쉽게 불이 붙어 화재 발생 시 불길이 지붕을 타고 확산하게 한다. 강철은 날아오는 불씨가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밀리킨은 “처음엔 강철지붕이 우리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고 시빌비트에 밝혔다.

 

3. 조경수 대신 집 둘러싼 돌?

 

2년 전 집을 수리할 당시 밀리킨은 마당의 조경수를 뽑아내고 1미터 두께로 강돌을 채워 집 주변을 빙 둘러쌌다. 목조주택을 갉아 먹어 피해를 입히는 흰개미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이번 화재에서 밀리킨의 집을 미라클 하우스로 만들어 준 결정적 조치가 됐다. 돌은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다가오던 불길이 밀리킨의 집터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목재 환경 연구소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 프로그램 책임자 마이클 와라는 “화재에 충분히 대비한 집이라도 옆집이 불에 타면 불이 붙을 수 있다”면서 ”조경을 제거하고 집 주변에 바위나 화강암 길을 설치하면 불길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 주변 5피트(152.4㎝)에 가연물질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며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 후 종종 나타나는 ‘기적의 집’들에 대한 연구 결과에서도 이 몇 피트의 조치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지옥불에서 홀로 살아 남은 자신의 집 사진을 보았을 때, 밀리킨과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안도감이 아닌 죄책감 때문이었다.

 

밀리킨은 생존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자원을 자신들이 차지하게 될까봐 라하이나에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집을 지역 재건을 위한 커뮤니티 허브로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라하이나에서는 지난 8일 전력망 결함 원인으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한 뒤 마을 전체를 집어 삼켰다. 제 때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변을 당하면서 지금까지 115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850명가량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즈나 정세비 '빛나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