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방국가 ‘대중국 디커플링’에 맞서
中, ‘차세대 소재’ 갈륨·게르마늄 통제
니제르 쿠데타 군부, 우라늄 수출 중단
“러 체제 편입 땐 분쟁의 시작점” 우려
日, 탈중국 속도… 사우디 ‘광물 큰손’ 부상
韓, 해외자원 투자 공제 10년 만에 부활
韓·日, 7광구 관련 ‘대륙붕 협정’도 과제
18일 韓·美·日 정상회담에서 논의 주목
미국과 중국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며 핵심 자원을 무기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전에는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엔 광물자원이나 식량 등으로도 그 대상이 확대되는 것이다. 각국이 합종연횡을 통해 핵심 자원을 확보하고 공급망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자원 빈국인 한국 역시 해외 자원개발을 비롯한 공급망 다변화에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갈륨·게르마늄은 경고에 불과
중국은 지난 1일부터 차세대 소재로 꼽히는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중국 업체들이 갈륨과 게르마늄을 수출하려면 국무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당장 주요 공급망에 충격이 오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지만 중국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갈륨의 98%, 게르마늄의 68%를 생산하고 있지만 점유율에 비해 당장의 타격은 크지 않다. 대체 수입선 확보가 가능한 상황이고 갈륨의 경우 미래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용 소재로 주로 쓰이기 때문에 당장 생산이 막힐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경고’ 정도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미국 주도의 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반도체 제재가 첨단반도체를 넘어 레거시(구형·범용) 반도체까지 이어지는지 등을 살핀 뒤 다음 단계에 돌입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국이 다른 광물을 통제하는 경우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정한 주요 광물 중 27개의 생산량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지난해 기준 갈륨, 마그네슘, 텅스텐 등 14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했다. 특히 한국의 주요 먹거리이기도 한 배터리 제조 5대 핵심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높다.
가장 확보 경쟁이 치열한 리튬의 경우 중국은 호주와 칠레에 이어 생산량 3위인데, 제련·정제 분야에서는 중국의 점유율이 1위로 뛴다. 중국은 흑연 생산량 1위, 망간 4위 등 배터리 제조 5대 광물을 모두 생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對)러시아 제재에서 빠진 우라늄
니제르 군부 쿠데타 사태로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우라늄 공급망 차질 우려가 증가하고 있지만 우라늄 무기화 위험은 지난해부터 제기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다.
우라늄은 일부 주요 광물과 달리 비교적 세계 곳곳에 매장돼 있다. 카자흐스탄, 캐나다, 호주 등의 순이며 러시아의 비중은 5% 정도로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농축 능력 때문에 러시아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 광석을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쓰기 위해서는 농축 등의 과정을 거쳐서 우라늄 함량을 높여야 하는데 러시아는 세계 농축우라늄 시장의 4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니제르가 우라늄을 차지하기 위한 새로운 지정학적 분쟁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쿠데타 세력이 러시아 바그너그룹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만약 니제르가 러시아 궤도에 들어가면 세계는 원자력 분야에서 러시아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핵연료를 사용한 뒤 50년간은 우라늄을 스스로 채굴하고 농축했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채굴과 복잡한 변환·농축 과정을 대부분 포기했다. 미국 에너지부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존 와그너 소장은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를 포함한 국제 핵연료 공급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 넘게 미국은 러시아산 핵연료 수입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
◆각국, 합종연횡으로 자원 확보 총력
자원 무기화 우려가 확산하자 각국은 자원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먼저 공급망에서 탈(脫)중국을 꿈꾸는 일본의 행보가 빨라졌다.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는 지난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담당 조직과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희귀금속 분야의 공급망 협력 강화에 나섰다. 이어 8월에는 JOGMEC가 잠비아·콩고민주공화국·나미비아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 핵심광물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미국은 몽골과 희토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니켈 생산 1위국 네시아와 리튬 생산 1위국 호주도 손을 맞잡았다. 배터리 제조에 특히 중요한 니켈과 리튬 생산국이 힘을 합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강국 사우디아라비아도 광물 전쟁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최근 브라질 광산 기업 발레SA의 지분 10%를 26억달러(약 3조4000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역시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 기업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현지에 합작공장을 세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핵심광물 확보에 나섰다. 정부도 올해 세법 개정안을 통해 해외자원 개발 투자 세액공제를 부활시키는 등 지원책을 내놨다.
한국과 일본 간에는 7광구를 둘러싼 한·일 대륙붕 협정도 과제로 남아 있다. 7광구는 제주 남쪽에서 일본 서쪽으로 걸친 약 8만2000㎢의 해양석유가스전이다. 1974년 양국은 50년 시한 협정을 체결해 유전 공동개발을 추진했는데, 이후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이 새로 발효되며 7광구 대부분의 영유권이 일본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커지자 일본은 1986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탐사를 중단했다. 협정이 만료되는 2028년까지 개발을 미루려는 게 일본의 전략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대륙붕 협정 종료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며 “미래 세대에게 빚이 되지 않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의 동진은 일본 측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은 7광구 서쪽 인접 해역에 무단으로 수십개의 원유 시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해양과학조사가 명분이지만 사실상 7광구 인근에서 원유·가스전 시추시설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가 해빙을 맞은 만큼 18일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도 7광구 관련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3국 정상회의와 별개로 한·미, 한·일 정상회담이 진행될 경우 대륙붕 협정 연장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일뿐 아니라 미국도 7광구 탐사에 참여해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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