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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R 7.0’ 암호 같은 카페 메뉴판, 이대로 괜찮은가요 [이슈+]

, 이슈팀

입력 : 2023-07-11 15:09:55 수정 : 2023-07-11 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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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한 누리꾼이 올린 카페 메뉴판 사진이 온라인을 들썩이게 했다. 사진 속엔 ‘BEVERAGE’(음료)라는 단어 아래에 ‘M.S.G.R 7.0’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7.0은 7000원을 뜻하는 걸 알겠는데 M.S.G.R는 대체 무엇인가. 음료 단어 아래에 있으니 음료일 것 같긴 한데 90년대생인 기자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미숫가루’였다. 미숫가루라는 발음을 영어로 변환해 가장 앞자리 스펠링을 따온 것이다. 당시 온라인에선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뜻 모를 영어메뉴판은 1년이 지난 지금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홍모(33)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의 한 디저트 카페에 갔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유명한 빵집이었는데, 모든 메뉴명이 영어로 작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홍씨는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는 카페라고 하지만 영어로만 메뉴판을 적어놓은 걸 보니 씁쓸했다”며 “영어만 적어놓는 게 ‘힙’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영어만 써놓는 메뉴판이 사라질 수 있을까. 영어메뉴판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자 국회가 나섰다. 메뉴판을 한글로 작성하거나 한글을 병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한글 작성이나 한글 병기 권장할 수 있게…”

 

11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전날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극장이나 음식점 등 공중접객업을 운영하는 자에게 메뉴판을 한글로 작성하거나 한글로 병기하도록 권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 의원은 개정안을 내며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 영어로만 작성된 메뉴판이 제공되고 있는 등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 증가가 바람직한 국어문화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국어문화의 확산과 국민의 이용 편의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이 같은 법안이 나온 건 카페나 식당에서 영어 메뉴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다. 한 누리꾼은 지난 5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메뉴판 한국어로 쓰는 법좀 만들었음 좋겠어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어로만 된 메뉴판 사진 8장을 첨부했다. 글쓴이는 “(사진은) 다 한국식당”이라며 “무슨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 정도는 한글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30만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나이 드신 분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뭐 주문이나 하겠느냐”며 “영어로 써놓고 진짜 외국인이 와서 영어로 주문하면 못 알아듣더라”고 비판했다.

 

이어 글쓴이는 “또 ‘1인1음료’나 이용시간 등에 대한 안내는 기가 막히게 한글로 적더라”라며 “나라에서 한국어 메뉴판 법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 역시 영어 메뉴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우리말이 훨씬 예쁘고 읽고 바로 주문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는데 왜 저러는지 정말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고, 다른 누리꾼도 “최소한 한글이랑 영어가 같이 쓰여 있으면 모르겠지만 영어로만 쓰여 있는 메뉴판은 정말 꼴불견”이라고 했다.

 

◆현행법으론 영어 메뉴판 못 막아

 

현행법으로 영어 메뉴판을 막을 수 있을까.

 

우선, 가게의 간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것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불법이다. 다만 적용범위가 한정적이다. 4층 이하에 설치되는 크기 5㎡ 이하 간판들은 허가 및 신고 대상이 아닌데,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는 4층 이하에 위치한다.

 

또 옥외광고물법에서 규정하는 광고물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되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메뉴판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메뉴판은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안이 발의된 이유다.

 

◆“외국어 사용? 능력 있어 보이고 세련된 느낌”

 

왜 일부 식당과 카페는 영어 메뉴판을 고집하는 걸까. 이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가능케 해주는 설문조사가 있다. 국립국어원은 2020년 전국 17개 시군 만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국민의 언어의식조사’ 결과보고서를 펴냈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5명 중 1명 꼴인 22.9%가 ‘외래어나 외국어로 된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능력 있어 보이므로’라고 답했다. 15.7%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세련된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외래어를 쓰는 10명 중 4명은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카페나 식당도 보다 전문적으로 보이거나 세련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영어 메뉴판을 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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