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 사건에서 정부가 소송 비용으로 이미 150억원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1일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엘리엇 ISDS 소송 관련 예산 내역’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엘리엇 사건 대응에 총 156억2900만원을 집행했다.

◆로펌 비용에만 99억원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내역은 법률 자문 비용(99억원)이었다. 정부는 법무법인 광장과 국외에선 영국 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린저’를 선임했다. 중재행정비용과 중재판정부 행정비용으로는 각각 41억원과 14억원이 쓰였다.
연도별로는 2019년 38억4600만원, 2020년 51억7500만원, 2021년 41억3300만원, 2022년 24억4200만원이 집행됐다. 올해 쓰인 중재판정부 행정비용은 향후 청구될 예정이다.
지난달 20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 사건에서 한국 정부에 5359만달러(약 690억원·환율 1287.5원 기준) 및 지연이자의 지급을 명했다. 지연이자와 법률 비용 등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금액은 1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서 손해 주장
엘리엇은 2018년 7월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PCA에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두 회사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갖고 있었다.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합병 비율이 제시되자 엘리엇을 비롯한 일부 주주는 반대 입장을 냈고,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주주로서 합병 안건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국민연금은 같은 해 7월 개최된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찬성을 의결했고 이틀 뒤 합병안이 통과됐다.
엘리엇의 ‘패배’로 여겨지던 두 회사의 합병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당시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중요했던 두 회사의 합병을 성사하고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에게 부정한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을 건넸다고 보고 2017년 재판에 넘겼다.
◆국정농단이 ISDS 빌미
이후 이 회장은 총 86억원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런 판결은 엘리엇의 ISDS 제기의 중요 근거로 사용됐다.
ISDS는 양자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상(FTA)상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투자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는 중재를 말한다.
판정 기준은 투자유치국이 국내법을 위반했는지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 조항을 어겼는지 여부다. 정부가 국내법에 따라 적법한 처분을 했더라도 투자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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