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삶과문화] 월든에서 케이프코드까지

관련이슈 오피니언 최신 , 삶과 문화

입력 : 2023-06-23 22:56:18 수정 : 2023-06-23 22:56:18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작가 소로, 자연·여행 통해 성장
떠남은 단순한 은둔·유흥 아냐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 나서고
자신과의 철저한 대면 위한 것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향인 콩코드다. 소로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답사를 왔는데, 그가 살았던 흔적들과 그를 기리는 장소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나의 첫걸음은 월든 호수로 향했다. 월든 호수는 8년 전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방문자센터에 재현해 놓은 그의 오두막은 수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노란 안전선이 둘러쳐진 바깥에 서 있는 소로의 동상이 마치 집을 잃고 쫓겨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인은 소로가 추구했던 자유와 독립의 정신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감수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소로를 흔히 낭만적 자연주의자라고 여기지만, 그의 면모를 찬찬히 살펴보면 한두 가지 호칭으로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소로는 시인이자 철학자였으며, 농부이자 측량기사이자 연필제조업자였다. 나무로 직접 플루트나 에올리언하프 등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고, 식물과 광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시민 불복종운동과 노예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모든 삼라만상에 관심을 가졌던 전인적 인간이었다.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소로가 생각했던 자연의 의미 역시 매우 다층적이다. 소로의 전기 작가인 로라 대소 월스의 표현처럼 “소로는 자신의 삶 바깥에 존재하거나 마을의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을 자연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자연은 그 자신과 사회를 아우르는 더 높은 진리”였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한 것은 1845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숲으로 간 이유를 “삶의 본질적인 진실만을 마주보기 위해서”라고 썼다. 자본의 질서와는 다른 자급자족의 삶을 실험하는 동시에 노예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국에 대한 자신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보낸 2년 남짓한 경험을 담은 책 ‘월든’은 무려 10년 동안 퇴고를 거쳐 출간되었다.

월든 호수에서 콩코드 시내까지 혼자 걸어와 보았더니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숙련된 산책자 소로라면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거리다. 그런 점에서 콩코드의 숲과 호수는 인공적 정원과 야생의 자연 중간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 소로는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았지만, 몇 번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메인 숲으로 세 번, 케이프코드로 여섯 번, 그곳에서 소로는 야생의 자연을 만났다. 소로가 죽음을 앞두고 다듬다가 결국 출간하지 못한 책 두 권이 바로 이 여행기다. ‘소로의 메인 숲’과 ‘대구 곶(CAPE COD)’이 그의 손으로 완성되어 생전에 출간되었다면 소로에 대한 당대의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콩코드에 오기 전에 케이프코드를 먼저 둘러보고 왔다. 해변에 작은 도시나 마을이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놓은 야생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구 곶’에서 흥미로운 점은 야생의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아주 꼼꼼하게 관찰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배가 난파되어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케이프코드로 향하던 발길을 코하셋으로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로는 매일 시체가 떠밀려오는 참담한 광경을 묘사하다가도 해초를 줍거나 들통에 식사를 나르는 모습 등 담담하게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콩코드의 익숙한 이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한결 객관적인 성찰을 하게 된 것 같다.

소로의 생각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개안에 이르게 된 계기들은 대체로 공간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콩코드 마을을 벗어나 월든 호숫가로 떠났고, 인디언 원주민의 안내를 받으며 오지인 메인 숲으로, 대서양의 파도가 일렁이는 케이프코드로 떠났다. 그 떠남은 단순한 은둔과 유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였고, 자기 자신과 철저히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우리 호수를 향해 걷는다. 하지만 인간이 천박하다면 아름다운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낯선 땅에서 소로의 이 문장을 오래 되새김질하게 된다.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한지민 '빛나는 여신'
  • 채수빈 '여신 미모'
  •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