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당국 작전명 ‘희망’
동승했던 어른 3명은 숨진 채 발견
공중서 음식 꾸러미 떨어뜨리며
도보로 2600㎞ 거리 훑으며 수색
추락지점 3.2㎞ 거리서 발견
아이들, 뿌리식물·씨앗 먹고 버텨
맹수·폭풍우 등 위험도 견뎌내
“누나는 전사… 생존에 핵심 역할”
작은 잇자국이 난 과일, 머리끈 포장지, 진흙 범벅이 된 기저귀만이 아이들이 생존해 있다는 신호였다. 이 작은 희망을 놓치지 않은 40일간의 필사의 수색이 끝내 기적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로 보호자도 없이 실종됐던 레슬리 무쿠투이(13), 솔레이니 무쿠투이(9), 티엔 노리엘 로노케 무쿠투이(4), 크리스틴 네리만 라노케 무쿠투이(1) 등 4남매가 ‘희망’이라는 작전명이 붙은 끈질긴 수색작전 끝에 모두 무사히 생존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콜롬비아 대통령실 제공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콜롬비아 군 당국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9일 구조된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해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근 보고타의 군사병원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콜롬비아 후이토토 원주민 공동체 출신인 4남매는 발견 당시 진흙투성이인 열대우림 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헝겊으로 발을 감싼 상태였다. 발견된 곳의 초목이 너무 빽빽해 군용기 착륙이 불가능한 관계로 구조대원들은 헬리콥터로 아이들을 정글에서 끌어올려 병원으로 향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4남매는 지난달 1일 조종사와 어머니, 아이들이 속한 원주민 공동체의 어른 1명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콜롬비아 과비아레주의 소도시인 산호세델과비아레로 향하던 중 엔진 결함이 발생해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추락했다. 그 자리에서 사망한 성인 3명은 사고 15일째에 구조대에 시신이 발견됐지만, 아이들은 소지품 몇 가지만 남긴 채 사고 현장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콜롬비아 당국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추락 지점 주변 상공을 맴돌며 “한 곳에만 있어라”, “너희를 잊지 않았다”는 아이들 할머니의 음성을 방송하고 음식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구조 활동 ‘작전명 희망’은 빠르게 확대돼 콜롬비아군 150명, 지역 원주민 자원봉사자 200명, 벨기에 셰퍼드견 10마리로 구성된 수색팀이 323㎢ 이상의 면적을 수색했다.

솔라노=콜롬비아군 제공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17일에는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트위터에 “수색 끝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실종된 어린이 4명을 생존한 채로 찾아냈다”며 “나라의 경사”라고 적었다가 하루 만에 구조상황을 정정하는 소동도 있었다.
하지만 수색대는 지치지 않고 수색을 이어가 나뭇가지와 가위, 머리끈 등으로 만든 임시대피소를 찾아냈고, 추락 지점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진흙 위에 선명하게 남은 어린아이의 발자국도 발견했다. 그러던 9일 오후 4시쯤 콜롬비아군 라디오에서 “기적, 기적, 기적, 기적이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아이들이 생존한 채 발견됐다는 군의 암호였다. ‘기적’이 4번 반복됐다는 뜻은 4남매 모두가 생존했다는 의미였다.

특수작전 합동사령부의 페드로 산체스 사령관은 가디언에 이번 수색작업을 위해 구조대가 도보로 2600㎞ 이상을 이동했다며 “대원들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10m 간격으로 걸었다. 40∼50m 높이의 나무가 우거진 원시림에서는 해가 숲 바닥에 거의 닿지 않는다”며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페트로 대통령도 이번 수색작전이 “원주민과 군 지식의 만남”이었다며 “새로운 콜롬비아를 향한 길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실제로 추락 지점에서 약 3.2㎞ 떨어진 곳에서 구조됐고, 동물들로부터 몸을 피하며 폭풍우도 견뎌내야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4남매의 삼촌 피덴시오 발렌시아는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아이들은 (잔해 속에서) ‘파리나’ 한 봉투를 꺼냈고, 그것으로 살아남았다”고 BBC에 밝혔다. 파리나는 아마존 지역원주민들이 밀가루처럼 사용하는 굵은 카사바 가루를 뜻한다. 카사바는 고구마와 유사한 탄수화물이 풍부한 뿌리 식물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아이들은 3㎏의 파리나를 먹으며 버텼고, 이것이 다 떨어진 뒤에는 씨앗을 먹으며 생존했다. 아이들이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식 가정교육 덕에 어떤 씨앗과 뿌리,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출 수 있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특히 첫째 누나인 레슬리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파티마 발렌시아는 레슬리가 ‘전사 같은’ 성격을 가졌다며 친척들과 캠핑 등을 통해 낚시와 사냥을 배웠다고 BBC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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