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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유의 여신상이 7일(현지시간) 산불 연기로 뒤덮였다. 잿더미에 빛이 닿지 않아 주변은 샛노랗기만 하다. 그 한가운데 흐릿하게나마 우뚝 선 자유의 여신은 어딘가 섬뜩하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연기를 헤쳐 버릴 수 없다는 점. 할 수 있는 거라곤 바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날 하루 종일 미국 동부를 덮친 매캐한 연기는 캐나다에서 날아왔다. 하루 동안 410여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이 중 230여건의 불은 사람이 끌 수 없다. 진화를 위해선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이예림 국제부 기자

20년 만에 발생한 역대급 산불의 원인으로는 끓는 지구가 지목됐다. 지난달 캐나다 날씨는 작년 대비 10도 높아 33도를 기록했다. 이례적인 폭염이 더 많은 번개를 일으켜 산불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한 열돔 현상이 산불 확산을 부채질한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불타는 지구 한편에선 얼음이 녹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엔 북극의 바다 얼음인 해빙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7년 안에 완전히 소멸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예상보다 10년 더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2030년 북극에선 물에 둥둥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볼 수 없다.

 

사라지는 얼음 조각들은 이상기후 현상을 부추긴다. 원래 얼음은 태양의 복사열을 우주로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해빙이 없어지면서 바다나 그 아래 토양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을 그대로 흡수해 기온 상승이 가팔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가뭄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해빙 감소와 캐나다 산불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엔 온실가스가 있다. 화석연료와 산림 벌채로 인해 방출된 온실가스는 얼음을 녹이고 지구를 뜨겁게 한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지난달 21일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끓는 지구를 외면했다. 정상회의 공동성명엔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등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확대를 강조한 내용이 포함됐다. 1년 전 선언한 탄소 제로 목표에서 멀어진 행보다.

 

성명에는 석탄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암시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수소 및 암모니아를 활용한 석탄 발전이 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목표에 부합한다면 계속 개발되고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단체들은 곧바로 비판 성명을 냈다. 그린피스는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필요에 직면해서도 G7 지도자들은 새로운 화석연료에 대해 지지를 표현했다”고 규탄했다. 옥스팸은 “러시아를 핑계로 천연가스 투자를 위한 구멍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한·미·일 정상회담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깜짝 일본 방문에 이 같은 소식은 자취를 감추었다. 환경 문제는 여전히 후순위 뉴스에 머물러 있다.

 

자연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는다. 기다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그 기다림 속에 사람이 죽는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의 생존 문제다. G7 정상들의 일보 후퇴가 뼈아픈 이유다.


이예림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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