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만건 이상 차단 조치 불구
해외 IP·대체 주소로 단속망 피해
현실적 어려움에 원천 봉쇄 난항
“차단 뚫릴 때마다 접속차단 반복
운영자 잡아도 본질 개선 어려워”
도박사이트를 비롯해 이를 홍보하거나 총책 등 공범을 모집하는 웹사이트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접속차단 조치에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 주소를 입력하거나 우회 접속을 통하면 간단히 접근이 가능해 정부 규제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방심위는 이 사실을 알지만 기술적 한계 탓에 근본적으로 이를 모두 막는 건 힘들다는 입장이다.
방심위가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를 통해 접속을 막은 A 온라인 도박 홍보사이트에 6일 접속해 봤다. 이 사이트는 접근차단 조치가 됐지만, 해외 아이피(IP)로 우회하는 프로그램(VPN), 사이트 내부 게시판 주소를 대신 입력하는 방식 등으로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홍보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불법 도박 운영자들은 자신의 사이트를 홍보할 공범을 찾는다.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경찰서가 도박공간 개설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B씨는 도박사이트 운영자 C씨와 이 사이트를 통해서 처음 접촉했다. 이후 접속차단 조치가 내려졌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A 사이트는 정상 운영 중이었다. 전날 이 사이트의 하루 접속자는 2만5500여명으로, 새벽에도 채팅 접속자가 1500명에 달했다.
A 사이트와 같은 홍보사이트는 광고글을 게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박 참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A 사이트는 “자체 검증을 거쳐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도박사이트”라며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 도박 참가자들은 보통 운영자가 도박 자금을 들고 잠적할까 경계하고 있어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유사 사이트가 적지 않다. 현행 규정상 도박사이트와 이를 홍보하는 사이트 모두 방심위의 시정 요구 대상이지만 단속망을 벗어난 지 오래다. 대부분 VPN 우회를 하지 않고도 접속이 가능할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A 사이트처럼 서버를 분산하거나 주소를 변경해 접속차단 조치를 무력화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사이트에 대한 방심위의 접속차단 조치 현황을 보면 2019년 4만8355건, 2020년 4만8255건, 2021년 3만6806건, 2022년 4만5888건에 이른다. 2021년엔 심의위 구성 지연으로 약 7개월간 심의 공백이 있었던 탓에 차단 건수가 적었다. 연간 4만건 이상 접속차단 조치를 하는데도 도박 관련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규제를 피해 가며 운영 중이라는 의미다.

방심위는 불법 사이트를 원천 봉쇄하는 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온라인 도박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무시할 수 없고 주목할 만한 문제”라고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업체가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 웹 서버를 관리하고 인터넷 주소도 조금씩 변경된다”며 “그때그때 (차단이 뚫릴 때마다) 다시 차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A 사이트 관련 수사를 맡은 마포서 관계자도 “도박 홍보사이트의 경우 방심위에 접속차단을 요청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며 경찰 수사를 이어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온라인 도박 관련 범죄자를 아무리 검거해도 범행 배경이 되는 사이트의 차단이 번번이 풀리는 상황에선 도박 문제의 본질적인 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도박 홍보사이트는 수수료를 얹어 도박 참가자를 모집하거나 유튜브에서 홍보할 총책을 구하는 등 공범 모집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 등 10명은 이와 관련해 지난 3월21일 “불법정보 사이트가 접속차단 조치를 해도 이용자가 우회해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맹점을 보완하겠다”며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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