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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카프카를 만든 건 브로트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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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31 22:54:52 수정 : 2023-05-31 22: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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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친구… 사후 유고 출간 ‘대문호’ 탄생케 해

“친구, 내 유고는 모두 불태워 주게.”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였던 막스 브로트(Max Brod)는 평생의 친구 프란츠 카프카의 이 같은 유언을 확인하고 카프카의 ‘유산 관리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프카가 폐결핵에 신경쇠약을 앓으면서 죽기 3년 전 미리 작성해 놓은 유언이었다.

카프카는 늘 자신의 작가적 재능에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에 출간된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비평은 늘 날이 서 있었다.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도 꺼렸다. 이미 작품이 담긴 두꺼운 공책 스무 권을 불태운 것도 그 아니던가.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하지만 카프카의 유고가 천재적 발상을 담은 문학작품이라면, 20세기 문학 자산일 뿐만 아니라 카프카 자신을 제대로 평가받게 하는 작품이라면, 시대와 사람들이 잠시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브로트가 카프카를 처음 만난 건 1902년 가을이었다. 학생회관에서 열린 대학생 독서모임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대해 강의했다. 니체를 거의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는데, 강의가 끝난 뒤 진한 파란색 정장을 한 학생이 다가와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닌가. 한 살 위의 카프카였다.

브로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라하우체국에서 법률가로 근무하며 미술평론가와 프리랜서 작가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카프카 역시 근로자 산재 보험국에 취직해 일하면서 귀가 후엔 창작에 몰두했다.

두 사람은 이 시기 자주 만나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자신의 재능을 의심할 때에도 칭찬하며 창작을 격려했다. 특히 과장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신과 달리 진지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문학에 감탄했다.

카프카에게 작품을 출간할 기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1912년, 카프카는 브로트의 도움을 받아서 첫 단편집 ‘관찰’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작품집에는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나무들’, ‘집으로 가는 길’ 등 세상에 대한 서늘한 시선과 존재의 불안이 담긴 7편의 소품이 실렸다.

마침내 1924년 카프카가 빈 근처의 요양원에서 숨졌을 때, 브로트는 유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는 친구의 유언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유언을 거부했다. 생전에도 카프카에게 유고를 불태우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 의사를 예고한 그였다.

대신 카프카의 미발표 유작을 차례로 출간되도록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체포당한 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다가 실패하는 ‘소송’과, 측량사로 초빙돼 성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단 한 발짝도 성 안으로 들여놓지 못하는 ‘성’과, 서른다섯 살 하녀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소년의 섬뜩한 이야기를 그린 ‘실종자’ 등등. 그는 나치 군대가 체코를 점령하자 팔레스타인으로 망명할 때 카프카의 미발표 노트와 일기 등을 챙겨가서 나중에 편집 출간했다. 특히 ‘카프카 평전’을 펴내 카프카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레고르 잠자(‘변신’), 게오르그(‘판결’), 요제프K(‘소송’), ‘성’과 ‘실종자’의 K…. 카프카의 작품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그가 작품을 통해 창조한 인물들은 세계를 점령했다. 마침내 20세기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한 작가로 우리 옆에 서 있다.

지금 시대는 여전히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고, 세상은 여전히 캄캄하고 불확실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카프카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하지만 카프카를 문학적으로 살려낸 그의 친구 브로트가 되겠다고 말하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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