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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 품고 있는 한강 위의 섬… ‘시간의 가치’ 일깨워주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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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25 08:00:00 수정 : 2023-04-24 19: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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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한강의 녹색 함대’ 선유도공원

신선 놀고 갈 만큼 아름다웠던 ‘선유봉’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다 한때 정수장
농축조·조정조 등 공간 곳곳 자취 남아
원형극장·수생식물원·정원 등 변신

기존시설 활용한 국내 최초 생태공원
문화재 아니어도 ‘감성의 공간’ 재탄생
한강에 놓인 보행전용다리 건너 입장
도심서 누리기 힘든 녹음 속 여유 제공

한강이 뜨겁다. 지구 온난화 얘기가 아니라 3월 초 서울시가 발표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6년 전에도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했는데, 세빛섬,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인공호안 녹화 등이 당시 추진했던 사업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2010년 중도 사퇴로 사업은 중단됐다. 그래서 이번 사업을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후속편’, ‘2.0’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유도공원은 한강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장소적 고유함을 통해 서울 안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울을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빌딩숲 서울에 빈 공간과 녹음을 더하는 선유도공원은 한강의 녹색 함대다.

사실 한강에 관심을 둔 서울시장이 비단 오 시장만은 아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재검토한 박원순 전 시장도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를 ‘여의문화나루’로 바꾸려고 했고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민선 1기 조순 전 시장은 ‘한강 8경 정비계획’을 수립했고 그다음으로 취임한 고건 시장은 ‘새서울 우리한강’ 사업을 통해 대규모 강변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대상지는 난지도, 노들섬 그리고 당시 선유정수장이 있었던 선유도였다.

계획이 발표되고 6개월이 지나 ‘선유도공원화사업 현상공모’ 당선자로 조경설계 서안, 조성룡 도시건축, 다산 컨설턴트로 이루어진 ‘서안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공모지침 중 주목할 만한 사항은 기존 선유정수장의 시설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선유도공원은 ‘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으로 불린다. 서안 컨소시엄은 잠재력을 지닌 기존 구조물들을 선별해서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해서 필요한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선유도의 원래 풍경은 겸재 정선이 ‘선유봉(屳遊峰)’이라는 글씨와 함께 그림으로 기록해 두었다. 그림에서 선유도는 물로 둘러싸인 섬이 아닌 봉긋이 솟은 봉우리다. ‘?’과 ‘仙’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결국 ‘屳遊峰’은 ‘신선이 노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다소 신화적이기는 하지만 그 풍경만큼은 신선이 놀고 갈 만큼 아름다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봉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한강 제방, 신작로 공사 그리고 여의도공항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 1978년에는 서울 서남부 지역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 선유도에 들어섰다. 그러면서 ‘물 가운데 있는 섬 안에 다시 물을 담는 장소’가 됐다. 사람들도 이 섬을 선유도가 아닌 ‘선유정수장’이라 불렀다. 선유정수장은 2000년 12월에 폐쇄됐다.

현재 선유도공원 내 각각의 시설에서는 선유정수장이었을 때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수된 물의 찌꺼기를 처리하던 농축조와 조정조는 원형극장, 환경체험마당, 환경교실이 됐고 약품침전지와 여과지는 시간의 정원과 수생식물원으로 바뀌었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정화된 수돗물을 모아두었던 정수지의 상판을 들어내고 기둥만 남긴 ‘녹색기둥의 정원’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30개의 기둥을 설계자는 담쟁이로 덮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출격을 기다리며 도열해 있는 녹색 거인들 같다. 그리고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와 엄마는 거인들을 도와주는 스태프처럼 보인다.

 

녹색 거인들이 출격을 기다리며 도열해 있는 듯한 녹색기둥의 정원.

기존 시설을 이용한 선유도공원은 우리에게 ‘시간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그 시간은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정수장이었을 때의 시간이다. 지금이야 가동이 멈춘 공장이나 쓰레기소각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창고나 병원이 카페로 개조되는 사례가 흔하지만 선유도공원이 개장됐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시간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나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유도공원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공간도 시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이런 변화된 관점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에 더 자극이 되었다. 역사적 장소나 문화재가 없는 지방 도시라 하더라도 산업화 시대에 사용하다 지금은 가동을 멈춘 시설은 하나쯤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장소나 건축물들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다소 진중한 공간이 아닌 ‘감성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공간에 감성이 깃들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스며들어야 하는데, 나의 옛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만큼 완벽한 조건은 없다.

과거 농축조와 조정조로 쓰였던 원형극장에서 열린 결혼식.

선유도공원이 일깨워 준 또 다른 가치는 한강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장소의 경험이다. 섬은 물로 둘러싸여 뭍과 떨어진 땅이다. 그래서 섬은 차안(此岸)에서 물을 건너 도착하는 피안(彼岸)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강에 놓인 최초의 보행전용다리를 건너 선유도공원으로 들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선유도공원은 서울 밖이 아닌 서울 안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울을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조경설계 서안의 정영선 대표는 선유정수장에 처음 갔을 때 가동을 멈춘 수조들과 기계장치들 때문에 선유도가 한강 위를 떠가는 거대한 선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선박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건 빡빡한 서울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녹음과 빈 공간이다. 녹음과 빈 공간이 더해진 풍경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배경이 되는 익숙한 서울과는 다른 모습의 서울을 발견하게 된다.

선유도공원 설계에 참여한 조성룡은 공원을 ‘도시의 여백’으로 본다. 도시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정신적 쉼과 여유를 갖는 공간이 공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원은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일어나는 문화예술시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한강변에 180m 높이의 대관람차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빽빽한 빌딩숲 서울에서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라면 반갑지 않다. 아무리 한강변에 문화예술시설이 부족하더라도 그 자리가 도심을 관통하는 대규모 공원이 한강과 연결되는 몇 안 되는 지점이라면 제2의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제2의 카네기홀이 들어와도 기껍지 않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서울시장의 중단된 정책의 2.0이 되든 3.0이 되든 시민들에게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한강이라는 장소의 기억과 경험을 시민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 그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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